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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겠다!” 대신에 “죽어버리자!”

편집부   
입력 : 2015-08-03  | 수정 :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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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불법공부를 하러 가던 중에 날이 저물어 토굴에서 하룻밤을 머물다가 잠결에 목이 말라 표주박에 고여 있던 물을 시원하고 달콤하게 마셨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잠결에 마셨던 물이 해골 속에 고인 물이었다지 뭡니까? 원효대사는 극심한 구토감을 느끼고 구역질을 하다가 ‘일체유심조’를 깨닫고 이런 게송을 지었답니다.
心生故 種種法生 心滅故 龕墳不二(심생고 종종법생 심멸고 감분불이)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분별이 일어나고 마음이 없어지므로 동굴과 무덤이 둘 아니라
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삼계유심 만법유식 심외무법 호용별구)
삼계는 유심이요 만법은 유식이라 마음밖에 법이 없는데 따로 구할 것이 무엇인가?

참 멋있는 게송이지요? 부질없는 욕심과 욕망에 자리를 내준 마음이 힘들어할 때면 간혹 소리를 내어 암송하곤 하는데 가끔 효과를 볼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멸하니 욕심, 욕망이 함께 자동소멸 되었는 경험을 했거든요.

사실 화엄경의 핵심사상이기도 한 이 ‘일체유심조’ 개념은 참 쉬우면서도 또한 대단히 어려운 개념인데요. 쉽게는 글자 그대로 일체는, 즉 모든 것은 다 마음이 만든다는 뜻으로 마음을 잘 써야 부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어리석은 중생이야 공부도 수행도 근기도 부족한 데다가 시간마저 따로 내기 어려운 형편이니 그 어마어마한 진리의 세계에 손가락 한 개라도 담굴 수 있겠습니까? 고되고 지쳐가는 일상 속에서 “아이고, 죽겠다!” 소리만 한숨처럼 뱉어지는 나날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 !! 저는 요즘 “아이고, 죽겠다!” 소리가 나올라치면 얼른 마음을 바꿔 “~하다가 죽어버리자!”라고 말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을 퉁퉁 부은 손으로 씻어 내면서도 “깨끗한 세수를 하다가 죽어버리자!” 그리고 밑반찬 몇 개뿐인 소박한 밥상 앞에 앉아서도 “공손한 밥을 먹다가 죽어버리자!” 그리고 일하러 가서도 “소중한 일을 하다가 죽어버리자!” 그리고 제 앞에 계신 당신의 서글픈 넋두리를 듣다가도 “하나뿐이자 전부인 당신을 이렇게 죽도록 사랑하다가 죽어버리자!” 라고요. 매 순간 최고의 몰입력을 발휘하기 위한 저만의 주문이 되어버린 셈인데요. 대자연으로부터 빌린 이 몸뚱이의 주인으로 살아갈 날이 앞으로 얼마만큼 더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는 동안은 아마도 이렇게 살아가겠지요? 어쩌면 나름 제법 맛있는 삶이 될 것도 같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잘 살다가 죽어버리자!” 하면서요!

이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