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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649호)

편집부   
입력 : 2015-07-16  | 수정 :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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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해탈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해탈해야 한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인가, 욕망으로부터의 해방이 해탈인가, 아니면 자기 속박에서 벗어남이 해탈인가, 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부인처럼 자기 인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원하는 일을 성취하는 것이 해탈인가, 어찌 되었던 우리는 해탈해야 한다.

해탈 없이 깨달음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분명 해탈은 그만큼 중요하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가난에 한이 맺혀 밤낮없이 일하고 하루 한 끼를 때우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한 결과 경제적 부를 이루었다.

이것이 해탈인가? 배우지 못해 설움을 받고 급기야 나라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고 나서 먹지 않고 자지 않고 공부하여 학문을 깨우치고 국민 대부분이 지식인이 되었다, 이것이 해탈인가? 그러나 물질의 성취는 심성을 혼탁하게 하고 인간관계를 더욱 냉정하게 만들었다. 학업성취는 과학적인 사고의 전도로 심성 진리를 무시하고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순리를 무시하여 환경파괴와 사회와 가정의 좋은 풍습이나 전통을 무너뜨리는 또 다른 문제점을 만들어 내었다.

물질은 풍부하고 지식의 수준은 분명 높아졌는데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가정을 원만하게 가꾸지 못하는 사람들도 날로 늘어만 왔다.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라는 불명예의 타이틀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해탈절,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으로 참회하고 실천하는 삶이 진정한 해탈을 가져오는 신행이다. 바라는 욕망을 채우고 해결하는 신행이 아니라, 항상 자기 성찰과 자기 창조로 불작불행(佛作佛行)의 삶이 진정한 해탈이다.

승려는 승려다워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승려가 승려답지 못한 사람이 많아졌다. 출가 승려든 재가 승려든 구분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세상에 답지 못 한 모습들이 너무 많다.

부모가 부모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며, 남편이 남편답지 못하고 아내가 아내답지 못하며, 스승이 스승답지 못하고 제자가 제자답지 못한 모습들이 너무 많아졌다.

부모는 가정의 중심이고, 스승은 사회의 중심이며, 승려는 세상의 중심인데, 중심이 중심답지 못하는데 주변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일찍이 성인은 “불법은 체요 세간 법은 그림자라 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곧고, 체가 굽으면 그림자도 굽는다”라고 하였다.

세상의 근본인 승려가 승려다울 때, 부모가 부모다워지고 스승이 승다워질 것이다. 서로가 반영되어 발전한다 하였으니, 정사가 정사다울 때 스님이 스님다워지고, 스님이 스님다울 때 정사가 정사다워질 것이다. 세상을 비판하기에 앞서 세상의 근본이치를 먼저 생각하여 승려가 승려다워져야 한다. 그래야 가정과 사회가 바르게 발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