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 정사-알기쉬운 교리문답

편집부   
입력 : 2015-07-01  | 수정 :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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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祭祀) 문제의 해법은 없을까요?

제사는 인류의 오랜 유산입니다. 농부는 풍작을 빌어 농경제를 지냈고, 비 오기를 염원하면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뱃사람은 선박의 무사 항해와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를 지냈었지요. 붓다 역시 제사를 부정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대대로 행하던 제사에 소홀함이 없었던 밧지국 사람들을 칭찬하신 일이 ‘장아함경’에 기록되어 있거든요. 다만, 두 가지 유형의 제사에 대해서는 그것을 옳지 못한 일이라고 못 박으셨어요.

첫째는 가축을 잡아 짐승의 피를 내어 귀신에 비는 비윤리적인 제사입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니는 이러한 제사의 과보로 인해 아귀의 몸을 받아 심한 고초를 겪었다고 하지요. 그녀는 살아생전에 하인들을 시켜 짐승들을 많이 사 오게 하여 양·돼지·오리·거위 따위를 달아매고 피를 내어 받게 했답니다. 집에서는 항상 짐승들의 울부짖는 비명이 그칠 날이 없었으며, 귀신에게 제사 지내고 남은 고기와 술을 먹고 놀이로 나날을 즐겼다는 거예요. 이러한 제사는 털끝만큼도 이익됨이 없고 오히려 죄업만 더욱 깊고 무겁게 할 뿐이어서, 잠시 동안 자비심을 내는 것만 못 하다고 붓다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지혜롭지 못한 제사입니다. 옛날에 한 무리의 상인을 태운 배가 인당수를 지나게 되었어요. 물살이 세고 소용돌이가 치는 것으로 유명한 이곳을 지나려면 한 사람을 제물로 바쳐 용왕의 노여움을 푸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게 당시 사람들의 믿음이었지요. 두려움에 떨던 상인들은 궁리 끝에 항해사를 바다에 던지기로 합니다. 다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사이인데, 항해사만 그렇지 않다는 게 이유였어요. 항해사를 제물로 바친 어리석은 상인들, 과연 살아남았을까요? 아니지요, 운전자 없는 자동차가 굴러갈 턱이 있나요? 뱃길을 잃고 좌초된 배는 결국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내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명절에 지내는 차례나 조상님이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는 가정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유교의 제례의식이 대부분입니다. 짐승을 잡아 살생의 업을 짓는 제사라든가, 한 사람의 몸을 던져 다수의 인명을 구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믿음에 기초한 제사는 현대에 와서는 거의 자취를 감춘 셈이지요.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세월에 등 떠밀리듯 바쁜 시절 인연을 타고 난 현대인들은 이제 일 년에 두어 번 지내는 제사조차 성가신 겁니다. 근래에 들어 부쩍 제사 준비의 수고로움과 현실적 불합리함을 토로하기 시작했거든요.

심지어 ‘인터넷 제사 시스템’이라는 가상의 제사가 특허를 획득할 만큼 우리의 몸과 마음은 고단하고 빠듯해졌으며, 탈 가족화 또한 심해졌어요. 가상의 인물이 화면 속에서 지내는 가상의 제사를 가족들이 참관하기만 하면 된다는 건대요. 글쎄요, 그렇게 빈 쭉정이 같은 제사를 우리네 조상님들이 과연 달가워하실까요? 과학과 합리성의 잣대로만 제사를 저울질하는 현대인들의 단상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개중에는, “정말로 조상님이 제사 음식을 드시는 거라면 일 년에 두어 번 올리는 제사 음식만으로 어떻게 사시겠냐, 그럴 거면 차라리 매일같이 제사를 지내야 맞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더라고요.

제사를 꺼리는 지금의 추세는 제사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형식에 얽매이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조상의 제사는 살아 계신 부모님께 효순하는 근본을 굳게 세우는 데 목적이 있지요. 형식보다 정신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음식을 잘 차려 놓아도 가족, 친지 간에 “잘했네”, “못했네” 이간과 환란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 제사는 안 하느니 못 한 것이 됩니다. 제사상 차리는 정성 못지않게, 차린 상 앞에서 영전을 대하는 자손의 마음가짐과 참회는 더욱 중요한 법이지요.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제사의 곤란함을 미리 내다보시고 각자가 사는 곳에서의 강도불사를 제안하셨던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옛날에는 이웃에 살아서 제사 지내기가 쉬웠지만, 지금은 넓게 흩어져서 살아야 크게 살게 되니 각자가 사는 곳에서 강도하는 것이 크다. 봉건시대는 대소 친척이 한동리에 살아서 잘되었고 산등성이 너머로 떨어져 살면 못되었다. 현시대는 각각 나눠 살아야 잘된다. 그러니 제사를 지낼 때라도 각각 그곳에서 강도를 하는 것이 조상도 복이 되고 자손도 복이 크다. (실행론 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