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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병과 육행약

편집부   
입력 : 2015-06-17  | 수정 :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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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요?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질병이 생기기도 하고, 인체의 장기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생하기도 합니다. 또한 필수적인 호르몬 등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화학성분이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많아서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특정 질병은 가계(家系)를 통해 유전된다고 합니다. 유전자가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경우입니다. 그런가 하면 거주지 인근에 존재하는 유해 환경이 질병의 단초를 마련하기도 하고, 정크푸드로 말미암아 균형 잡힌 식단이 깨지고 흡연 등의 나쁜 습관 때문에 질병이 발생하고 악화되기도 합니다. 어떤 질병은 개인의 죄가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고, 질병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려는 진리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도 생각되어졌습니다. 요즘처럼 산업화한 사회에서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요인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의 평소 생활습관에 대한 진단만큼이나 결혼생활을 비롯한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묻는 것은 무척 중요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전통적으로 불교는 마음의 상태가 질병의 중요한 직접적인 변수임을 알고 이것을 다스리는 데 노력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의 체계로 이해하고 몸과 마음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 균형 유지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계를 끊임없이 괴로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고해로 규정하고, 이러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르침[離苦得樂]을 베풀어 왔습니다. 그런데 모든 괴로움 가운데 이른바 병고(病苦)는 직접적으로 부딪는 것으로 가장 치열한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실제 병과 약의 문제로 본다면, 병을 치유하는 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에게 달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병이 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인간다운 것입니다. 문제는 몸이 아프고 병들었을 때, 질병의 인과를 받아들이고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치유하면서 인간은 성숙하고 발전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은 그냥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병이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반성작용을 거부합니다.

약에만 의존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자생력과 치유력은 죽어갈 수 있습니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근본적 원인 자체를 은폐시키고 정신과 육체를 더욱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몸이 말해주는 경고의 메시지를 무시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내면세계와 단절하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반성작용 자체를 죽여 간다는 겁니다. 무얼 잘못 해서 병에 걸렸는지를 묻지 않게 하고 병이 들고 병이 낫는 인과 자체를 무시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말 아파 본 사람들은 결국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시인하게 되는데,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관계의 지형을 일그러지게 한 자신의 욕심에 대한 반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때 관계의 합리성이 회복되면서 자기 치유력이 작동한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옛말에도 진정한 의사는 약으로서 환자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려서 병을 고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냥 추상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국 관계의 방식, 즉 삶의 방식을 고쳐서 병을 고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살아있어야 할 것이 제 모습을 되찾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순도는 관계적 합리성의 정도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관계를 자기중심적으로 가져갈수록 그만큼 욕심을 부리는 정도가 심하다는 이야기일 것이고 관계는 꼬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관계설정이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일수록 그리고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수록 마음의 순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불교에서 마음을 말하는 것도 그럴 것입니다. 관계적 합리성 속에서 <나>라는 것이 완전 연소될 수 있을 때 무아를 말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보편적 상호연관의 질서체계 속에 녹아들어 갔을 때 마음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마음을 잘 쓴다는 것은, 일그러지고 얼룩진 관계들로부터 그리고 아집의 영향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가의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을 잘 쓴다는 것은 관계를 바로잡으라는 의미이고 이것은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잘 쓴다는 것은 관념적 유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명확한 자기 결단을 요구하는 무진서원입니다. 병든 생활방식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고질(痼疾)을 지나 병에 이르게 한 관성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상당한 각오와 의지력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고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집의 속박으로부터 탈출이 이루어질 때, 삶의 방식의 전환을 향한 결단이 이루어질 때, 그때 발생하는 에너지라면 능히 몸의 건강성을 회복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백약이 무효해도 백약의 효능을 넘어가는 자기 치유력은 분명히 있습니다. 마음은 그러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수각 정사 밀각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