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 정사-알기쉬운 교리문답

편집부   
입력 : 2015-06-17  | 수정 :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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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부는 왜 쓰나요?

학기 초부터 장학금을 목표로 의욕을 불태우는 대학 새내기의 마음, 하객들 앞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할 것을 서약하는 신랑 신부의 그 마음……. 가장 치열하고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첫 단추를 끼우는 초발심(初發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올바로 정립된 이 마음가짐을 한결같이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른 깨달음은 처음 마음먹은 그 순간에 이미 얻어진다고 합니다.〔初發心時便正覺〕 처음 시작할 때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가짐 그 자체가 바로 초발심이거든요. 희망찬 을미년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타종 앞에 우리는 저마다 초발심으로 돌아가 경건한 마음으로 신심을 바로 세우고 용맹을 다졌었지요.

그러나 단단히 마음먹고 출발한 길이 어느 샌가 고단한 육신을 쉬라며 갓길 좁은 터를 내주기라도 하는 날에는 눈이 천근만근이 되어 가고, 다리는 조금씩 저려 오고, 옆 사람과의 거리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여 불현듯 왜 이 길을 떠났던가 하는 하근기 중생의 회한이 물결치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이 이처럼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요. 군대 다녀온 성인 남성이라면 ‘봉지라면’ 모르는 분 안 계시죠? 냄비에 넣고 정식으로 끓이는 게 아니라, 짭짤한 분말스프를 대충 쏟아 넣은 뒤 봉지 째 물을 부어서 설익은 면발을 휙휙 저어 폭풍 흡입했던 추억의 라면……. 고단하고 빠듯했던 병영 생활에 자그마한 위안이 아닐 수 없었지요.

전역하고 시간이 흘러 일부러 만들어 먹어 본 봉지라면. 그런데 그 때 ‘그 맛’이 아니더라고요. ‘왜일까, 그 땐 참 맛있었는데……’ 화두를 참구하는 자세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결과, 그 이유를 찾았어요. 결국 라면은 그 라면이 맞는데, 입맛은 그 때 ‘그 입맛’이 아니었던 겁니다. 쉽게 말해 배가 불렀던 거지요.

바야흐로 외식산업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고 마트에는 다양하고 신선한 먹거리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멀건 무국에 된장만 풀어 넣어도 알루미늄 식판의 메인을 차지하던 ‘그 시절’ 인연과는 이미 달라도 너무 다른 겁니다. 그러니 알록달록 맛 나는 음식에 조금씩 지속적으로 길들여진 ‘혀’는 더 이상 예전의 봉지라면 나부랭이(?) 맛에 찬사를 보낼 리 없게 된 거지요. 말하자면 이미 ‘초심’이 아니었던 겁니다.

초(初)는 ‘옷 의(衣)’ 변에 ‘칼 도(刀)’를 더한 글자로, 처음 또는 시작을 나타냅니다. 옷을 재단할 때 칼로써 첫 마름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옷의 모양은 결정되게 마련이거든요. 곧 칼을 어떻게 대느냐에 따라 속옷과 겉옷, 바지와 저고리가 결정되듯이, 처음 마음을 내어 불법을 공부하는 이가 첫마름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공덕이나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이 글자는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지요.

진각종에서 불사 때 강도발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불법에 인연 있는 이들이 제도되고 동참한 진언행자의 복덕과 지혜를 서원하는 불공을 '강도(講度)'라고 하지요. 강도 불사를 통해 대중이 동참한 가운데 서원 성취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강도발원(講度發願)’이라고 하며, 강도발원의 내용이 되는 구체적인 서원을 기입하는 용지를 ‘강도부(講度簿)’라고 합니다. 따라서 강도부를 쓴다는 것은 곧 불공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일이 되며, 매 불공을 초심으로 이끌어가는 진언행자의 꾸준한 원력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