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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잔에서 배운 무위 정신

편집부   
입력 : 2015-05-30  | 수정 : 201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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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겨울 패키지여행으로 캄보디아에 갔을 때의 일이다. 관광을 하다 우리 일행은 기념품 가게로 안내되었다. 마침 은잔세트를 묶음 세일하길래 몇 가족이 공동구매를 하게 되었다. 

계산과 분배를 마무리할 즈음, 곁에 있던 일행 중 한 청년이 “그 은잔 때 끼는데요…”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제서야 그곳 한인 식당에서 본 우중충하고 보잘 것 없던 물컵이 바로 이 근사한 은잔이었구나 싶었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고,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그 젊은 친구에게 “미리 얘길 좀 해 주지~”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상담중이시라…” “그러면 한 사람 불러내어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나의 가벼운 핀잔과 함께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간의 다소 불편한 관계가 남았다.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뜩치 않아 혼란스러웠다. 남은 일정에 걷는 코스가 많았는데 서로 불편한 만큼 희한하게 자주 마주쳤다. 귀국 전날 저녁, 마침 그 젊은 친구가 숙소 로비에 혼자 앉아있었다. 나는 옆자리에 앉으면서 “우리 그 은잔, 때와 함께 쓰기로 했어.”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잘 하셨네요.” 그 친구가 밝게 웃으며 손을 잡았다. 환담을 나누었고, 상황은 더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당시 느닷없이 생각나서 던졌던 사과 표현이었지만 희한하게도 내부와 외부의 갈등을 모두 말끔히 해소시켰다. 도대체 그 표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그 표현에는 ‘무위’의 정신이 담겨있다. 그냥 사과를 했을 경우, “ ‘때 끼는 은잔’을 잘못 구매했다, 하지만 당신의 선의에 언찮게 반응한 데 대해서는 미안하다.”는 식이 된다. 잘못된 구매가 깔려있기에 사과를 하는 입장에서도, 받는 입장에서도 매우 흔쾌하지는 못하다. 때 끼는 은잔의 본래 모습을 수용해야 만이 이 문제는 해소가 가능하고, 이러한 자세가 무위의 태도인 것이다. 때 끼는 금속을 폄하하는 태도는 문명이 우리에게 심은 유위 우선의 가치관이다.

문명은 온통 편하고자 하는 유위가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문명의 유위가 몸에 배이면 본래 상태인 무위처럼 느껴지고 그 착각에서 온갖 갈등과 문제가 생겨난다. 자동차를 너무 당연시하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되고, 여기서 온갖 일들이 파생되는 것이다. 걸으면 더 온전한 현재를 살게 됨은 망각한다. 

때 끼는 금속은 유위의 문명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스텐레스를 본래 상태인 것으로 여기면 때 끼는 은잔은 늘 잘못된 구매가 되고 만다. 무위의 자세를 회복할 때, 은잔의 때를 수용하고 닦는 수고를 감내하게 되며, 그 때서야 은잔도 본래 가치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유위가 만들어내는 문제는 무위의 회복으로(만) 깨끗이 해소가 가능하다는 교훈을 은잔이 보여주었다.

글을 쓰고 나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 싫어 은잔의 때를 수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반문이 생겼다. 하지만 바른 해석은 무위를 회복하면 자기건 남이건 탓하기 자체가 해소되어 감정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재영 위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