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26

편집부   
입력 : 2015-05-15  | 수정 : 20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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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과 화신

"하늘의 달이 일만 물에 비치니 허공의 달은 법신이요, 물 가운데 비치는 달은 화신이다. 허공의 달은 천하만국(天下萬國)을 비추며 일체 물에 비치되 그 달이 하나이듯이 법신의 진신(眞身)이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니 그 화신의 진신은 하나이다. 하나가 무량이 되고 무량이 하나가 되며 이것이 저것 되고 저것이 이것 된다."('실행론' 제2편 제5장 제3절 나)

연등… 연등… 연등…

심인당은 오월의 색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다. 푸르름이 지나쳐 맑디맑기까지 한 하늘을 이고 다소곳이 자태를 드러낸 심인당은 말 그대로 비로자나금강법계궁전이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다본 심인당은 수미산 같은 위엄이 어려 있고, 하늘 아래 최고의 궁전처럼 기품이 서려 있었다. 빛이 났다. 한낮의 햇빛을 받아 반사경처럼 내뿜는 반짝거림은 여의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움 자체였다.

진찬이가 발걸음을 재촉해 심인당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멀찌감치 서서는 보이지 않았던 연등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연등물결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형형색색의 연등이 뒤덮고 있어 심인당 앞마당 전체에 널따란 그늘까지 드리워져 포근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진찬이도 신청서를 작성하고 연등 값으로 미리 준비해온, 돈이 든 봉투를 통째로 신청함에 넣었다. 신청서에는 물론 봉투에도 이름은커녕 몇 개의 등을 신청하는지조차 쓰지 않았다. 그저 심인당에서 알아서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한 등이 됐건, 두 등이 됐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이다. 연등의 크기도 그렇고, 종류도 마찬가지였다. 부처님오신날을 찬탄하는 생각 하나로 마음을 밝히고 세상을 밝게 비출 연등이면 만족할 일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비록 적은 값으로, 작은 마음으로 밝히는 연등 하나가 행여 어느 누구에게라도 미세한 영향을 미쳐 그가 잃었던 용기를 다시 찾고, 내려놓았던 희망의 끈을 붙잡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온갖 염원과 서원을 담아 심인당 앞마당에 내건 연등을 이리저리 살피며 바라보다가 진찬이는 마음으로 정한 염송을 시작했다. 염송을 하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순식간에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염송을 마치고 다시 심인당 앞마당에 내려서서 연등을 살펴보던 진찬이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그동안 매달아놓았던 연등이 복제라도 됐듯이 앞마당을 빈틈 없이 채워놓았다. 그것도 세 시간 전보다 더 촘촘히 매달려 있었다. 심인당 양옆과 뒤쪽으로까지 어느 한 곳 빠진 부분 없이 심인당 전체를 연등이 뒤덮고 있었다. 진찬이는 잘못 본 듯해 눈을 비벼보았다. 눈가에 닿는 손의 느낌이 온전하게 전해졌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순간 한 사나이가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시골출신으로, 어린 생활을 힘들게 보냈던 이다. 어렵사리 기회를 얻어 도시로 나가서는 이것저것 안 해본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자수성가했다. 그런 그가 어느 정도 돈을 모았을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어했던 것은 장학사업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못했던 포원이 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일으킨 그는 뒤돌아볼 것 없이 곧장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첫 해에는 10명, 두 번째 해에는 20명, 세 번째 해에는 40명……. 그가 장학금을 주는 학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계가 있을 법한데 그는 결코 숫자를 줄이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을 학생의 숫자를 늘려 가면서 시대적 환경과 돈의 가치를 감안해 오히려 장학금 액수도 부풀려 나갔다. 장학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해 위태위태하게 사업을 끌어간 적도 없지는 않았지만, 옆길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갔다. 그토록 무수히 배출된 얼굴들이 차례로 눈앞에 떠오르면서 그들이 하나씩 나타나 연등 한 개씩을 매달고 총총히 사라져 갔다. 순간 진찬이는 볼 살을 꼬집어보았다. 아팠다.

나날이 좋고 좋은 날이라고 했다. 나날이 좋고 좋은 날이라는 말은 좋지 않은 날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같은 날이라도 기분 좋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날일 것이요, 마음이 언짢은 이에게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깝거나 지겹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날이 될 것이기에 그렇다. 날에 좋고 나쁨이 있을 수야 없다. 날은 같은 날인데, 마음 움직임과 쓰임에 따라 스스로 좋고 안 좋다는 것을 판가름하며 우기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 경우야말로 도깨비노름이다. 어버이 섬기기를 매일 같이 잘하면 매일이 어버이날이요, 부부간에 금슬이 좋다면 매일 부부의 날에 다름 아닐 것이다. 굳이 정한 날을 찾아 1년 365일 잘못한 것을 뉘우치며 한날 한꺼번에 잘하겠다고 벼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을 없을 것이다. 

진찬이는 ‘빈자일등’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연등 하나가 수만 개의 연등으로 번식하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생명 있는 것으로 증식하는 연등,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무한복제가 가능한 사이버세상에서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무한대로 확장되고 유포되는 사이버세상에서는 조금 전 환영처럼 보았던 것이 실제처럼 가능하겠다는 기대에 들떠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기기를 켰다. 사이버심인당을 검색하자 눈에 익숙한 이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름을 가진 수많은 사이버심인당이 나타났다.

사이버심인당에도 연등이 내걸려 있었다. 알록달록한 연등이 천연색의 자태를 자랑했다. 햇볕을 받아 색을 바랠 수도 있고, 자연에 노출돼 고유의 빛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색깔이 아니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색 연등이 있는가하면, 가슴이 뻥 뚫릴 정도의 빨간색 연등이 있었다. 스무 살 처녀의 수줍음보다도 더한 샛노란 연등도 눈에 띄었다. 티 하나 없을 것 같고 시름 하나 없을 것 같은 사이버세상의 연등을 바라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사이버심인당의 연등배열방식은 특이했다. 태양처럼 커다란 연등이 중앙부분을 장엄하고 그 주변으로 조금 작은 연등이 원을 그리며 촘촘히 나열돼 있었다. 둥근 원을 이룬 연등 안쪽으로는 좀더 작은 연등이 배치돼 있어 태양계를 본떠 만든 것처럼 여겨졌다. 역시 그랬다. 마우스 커서를 연등 위에 살짝 올려놓자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태양과 지구, 달의 관계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법신과 화신, 보신 등 삼신의 세계관을 의미한다는 친절한 내용까지 덧붙어 있었기에 눈으로만 보지말고 생각을 하면서 마음으로 찬찬히 둘러보라고 권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연등을 밝히는 기간도 많이 다른 듯 했다. 봉축시즌이라고 하는 한철 동안만 불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1년 연등, 3년 연등, 5년 연등, 10년 연등, 평생 연등도 있었다.

심인당을 나온 진찬이는 심인당으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심인당이 잘 바라보이는 먼발치에 서서 뒤돌아 섰다. 오색연등이 남실바람에 얹혀 가볍게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교경전을 기록해 바람에 나부끼게 해서 불법이 널리 전파되기를 기원한다는 ‘룽다’라고도 하고, ‘타르초’라 하기도 하는 깃발처럼 생각됐다. 심인당을 가운데 두고 사방팔방 펼쳐진 연등의 장관은 심인당이라는 법신을 중심으로 수많은 화신이 나툰 것처럼 여겨져 더 없는 황홀경을 만들어 보였다. 진찬이는 그 자리에서 합장을 하며 희락의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되돌렸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