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업이고 운명…불자로서 실천하는 삶 살고 싶어”

편집부   
입력 : 2015-04-02  | 수정 :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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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무료급식소 운영하는 의현·정용숙 부부

2009년 오천무료급식소 본격운영
하루 100여명 어르신 찾아 식사
복지법인 설립해 온정 나누고파

“불자로서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전생의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요.”

봉사를 자신의 업으로,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실천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포항 신락심인당(경북 포항시 오천읍 정몽주로599-12) 신교도 의현(오일수·59세)·정용숙(56세) 부부는 봉사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마지막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 22일 이들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오천무료급식소(오은봉사회)를 찾았다. 이른 점심시간이었지만 급식소 밖에는 어르신들의 자가용(유모차를 개조한 손수레)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낮 12시부터 급식이 이루어지지만 일찍 오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오전 11시 30분경이면 급식을 시작한다고 한다. 2008년 시작해 올해로 7년째다.

시작 당시 경제적으로 누구를 도와줄 형편이 되진 않았지만 건물이 있고, 식당도 운영하고 있어 어르신들을 위해 점심 한끼 대접하지 못하겠느냐는 생각으로 식당과 병행한 것이 무료급식소 시작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운영은 2009년 9월 정용숙 보살의 큰 오빠 죽음을 통해서다. 자신을 많이 아껴준 오빠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길지 않은 인생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살아야겠다는 발심이 생겨 식당을 접고 오천무료급식소 간판을 걸어 어르신들에게 무료급식을 본격 나섰다고 한다.

“이 일은 솔직히 발심만으로 하기는 어려움이 있어요. 자비와 희사정신이 바탕에 없다면 힘들죠. 그리고 무엇보다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야 해요. 특히 보살님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다면 사실상 힘든 일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저는 무척 복 받은 남편 중에 한사람입니다.”
의현 각자(남자 신도)는 자신의 말에 귀담아 주고 묵묵히 따라준 보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처음 시작할 때 가족의 적극적인 호응 없이는 힘들었을 겁니다. 특히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경제적 지원이 큰 힘이 됐지요.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지난해 돌아가신 시아버님과 친정 부모님의 도움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정용숙 보살의 친정아버지는 급식소 자리를, 시아버지는 택시운전으로 십시일반 모아온 금액 전부를 무료급식소 운영에 지원했다.

“처음 시작할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말고 스스로 한번 해보자고 맹세했어요. 그런데 3년 정도 운영하다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3개월 동안 밥값으로 1천원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오시던 어르신들의 발길이 1/3로 줄더라고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아요.”

처음 운영을 시작하자 120여 명의 어르신들이 찾았다고 한다. 현재는 100명의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간다.
오랜 기간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할 수 있는 비결은 가족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도 도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자원봉사자와 후원단체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현재 이곳에는 ‘바르게 살기’, TCC한전지원사업부, 동국산업 ‘디딤돌’ 자원봉사자들과 식당을 하면서 함께 한 지인들이 십시일반 비용을 모으고 밑반찬도 준비한다. 다행인 것은 현재 포항시로부터 50명에 대한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머지 비용은 부부와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충당하고 있지만 급식소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오천무료급식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영된다. 식사를 준비하는 10시부터 배식에서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면 오후 1시가 넘는다.
해운항만청 공무원인 의현 각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어르신들과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고 정용숙 보살은 주방에서 자원봉사자들과 음식을 준비한다. 이렇게 바쁘게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정용숙 보살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시간을 이용해 ‘농협 사랑방봉사회’, ‘풍물단’, ‘노래교실’ 등지에서 또 다른 봉사활동을 펼친다.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넘친다.

처음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면서 혹여 우리가 봉사자들을 고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봉사자들이 오히려 봉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말해줘 더욱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봉사는 사람의 마음과 얼굴 모습도 변하게 해주 것 같아요. 인생에 뭔가 도움을 주고 살아야겠다고 시작한 것이 지금은 좋은 분들 많이 만나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용숙 보살은 급식소를 찾는 어르신들에게 살갑게 대한다. 호칭도 엄마, 아버지다.
“이곳을 찾아오는 어르신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합니다. 밥 얻어먹으러 오신다는 생각하지 말고, 딸집에 밥 한 끼 잡수러 온다고 생각해 달라고 말이죠. 어르신들은 밥과 반찬이 중요하시지 않으신 것 같아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스킨십이 필요하신거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었다. 주위에서는 ‘어른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 ‘정치하려고 한다’ 등등의 시샘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때마다 부부는 시샘에 귀 기울지 말자고 다짐했다.
“처음부터 남들이 알아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괘념치 않았습니다.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사람들은 몰라도 법계가 알아주면 된다고 생각했었죠.”

이들 부부가 지금까지 경계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저 사람들 착한일 하네’ 라는 말이다.
“내가 진짜 착한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면, 사람이기 때문에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우리에게 칭찬하는 것을 귀담아 듣지 말자고 항상 다짐합니다.”

의현·정용숙 부부는 석인·선해심 스승이 신락심인당에서 주석하고 있을 당시인 2007년에 심인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식당을 하면서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을 때 종종 찾아오셔서 심인당의 절량미를 전액 희사해주시면서 용기를 주는 등 도움을 많이 주셨죠. 공부하고 싶은 열망은 항상 있었기 때문에 어느 날 저녁, 혼자 심인당에 잠시 들렸는데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때부터 진각종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이후 의현 각자는 ‘은혜는 평생으로 잊지말고 수원은 일시라도 말라’는 은혜경 첫 구절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가슴 깊게 새기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의현 각자는 봉사활동 못지않게 불자로서의 신행 생활도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올해부터 1시간 새벽정송도 시작하고 각자(남자 신도)들의 모임인 유마회 모임을 결성해 총무직도 맡았다.

“불자라면 주어진 시간을 정해놓고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며 자비와 희사의 가르침을 법문으로만 듣지 말고 실천해야 됩니다. 이것이 곧 불법을 실행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봉사활동을 생각하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예비 봉사자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먼저 사심을 버리세요. 그리고 내 작은 봉사가 누구에게는 행복이고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망설이지 말고 바로 실행에 옮기세요. 그 순간 가장 행복한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실천해 보세요.”
이들 부부는 큰 꿈이 있다. 비영리법인인 급식소를 복지법인으로 등록시킴과 동시에 요양시설을 짓는 일이다.

“어르신들의 비보기사를 접하면서 우리 지역에서 만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료급식소 2층에 무의탁 독거노인을 위한 복지시설을 건립하고, 나아가 어린이 시설 운영도 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한 1차 목표가 복지법인으로 등록하는 일이지요.”
오천무료급식소는 어르신들의 급식과 함께 일요일 무료 미용 봉사와 저소득아동 대상 공부방운영을 위한 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후원 문의 054-291-6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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