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중생가

편집부   
입력 : 2015-02-17  | 수정 : 2015-02-17
+ -

법회 때면 염송하는 서원가, 그런데 정작 그 뜻을 이해하게 된 건 진각종에 입문한 지 5년이 지나서 였다. 나에게 그 때까지 중생가의 의미는 막연하나마 중생가(家)였다. 중생가가 없다는 말은 집없는 빈한한 서민이 많다는 뜻? 아니면 중생을 제대로 다루는 전문가가 없으니 제도하기를 힘써라는 의미? 그런데 보리에는 왜 위(位)이지? 실로 깨달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뜻? 부끄러운 이야기 이지만 의미의 안개 속에서 그 긴 시간을 지낸 것이다.

그런데 그 날 법회 따라 눈에 띄인 한문, 중생무변(衆生無邊)! 중생가는 운율을 만들기 위한 한자어와 우리말의 더할 나위 없는 조합이었던 것이다. 끝이 없다는 의미! 순간 멍 해졌다. 불교의 정신이 메시지의 표현방식에도 그대로 배어 있다니… 읽는 사람을 한계상황으로 몰아넣는 표현의 지혜. 중생에는 경계가 없으니 제도 좀 했다고 나대지 말라, 법문에는 끝이 없으니 좀 공부했다고 우쭐하지 말라, 복과 지혜에도 끝이 없고, 깨침에는 여전히 더할 나위가 있고, 부처의 수준은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다함이 없이 기원(無盡誓願) 하라… 곧 지극함과 겸허함, 이것이 서원가의 교훈임을 나름 깨닫게 되었다.

어이없는 오랜 미혹 끝에 얻은 또 하나의 교훈은 배움의 원리이다. 만약 입문할 때 중생가의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면 아마 깨침 보다는 그렇구나 했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는 숙성은 더 큰 배움을 낳을 수 있다는 교훈!

숙성을 통한 배움의 인상적인 사례 두 가지. 이경숙씨는 노자 『도덕경』을 이전과는 달리 해석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이 밝힌 한문 공부의 과정이 파격적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는 늘 한문 경전들을 붓으로 필사하였고, 어린 경숙은 곁에서 따라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체계적인 한문교육을 받지 않고도 옥편만으로 스스로 그 뜻을 공부하였다. 그녀는 어려운 철학적 주석도 없이 5,000자 도덕경을 쉽고 일관된 흐름 아래 해석해 내고 있다.

19세기 저명한 생물학자 아가시즈 교수의 독특한 교수법은 제자들의 회고담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대학원생들은 물고기 표본을 밑도 끝도 없이 관찰하는 훈련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떤 자료도 보지 말고 동료와 대화도 하지 말라는 엄명과 함께. 최종 과제는 여러 마리 분의 뒤섞인 어류 화석들을 맞춰내는 일이다. 현장에서 발굴을 할 때 화석 파편 하나만으로도 개체의 형상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가 이런 교수법의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한 제자의 회고담이다. 관찰 훈련을 힘들게 거친 후, 어류를 분류한 자료를 읽다가 자신이 관찰한 내용과 다름을 파악하고는 아가시즈 교수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교수가 답하기를 “이 사람아, 그건 자네와 나 두 사람밖에 모르는 사실이야.” 아가시즈 교수는 공부를 어떻게 하고 또 가르쳐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교육자였고, 그 방법 속에는 숙성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었다.

위덕대 교육대학원 신재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