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19

편집부   
입력 : 2014-08-04  | 수정 :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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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불교는 본심을 깨친다

“심인불교는 본심을 깨치는 진리이다. 내 마음이 작으면 탐진치로 인해 이웃과 동네와 나라와 화합하지 못한다. 마음의 고통은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생긴 병이니, 지비용(智悲勇)으로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 약(藥)이다.”(‘실행론’ 제2편 제3장 제2절 가)

자기를 바로 보아야

불상은 단아했다. 그다지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았다. 너무 커서 위압적이지 않을뿐더러 너무 작아서 볼품 없지도 않은 그야말로 고졸함의 아름다움이 서려 있었다. 한국형 맞춤식이라는 말이나 표현이 딱 어울릴 듯한 불상이었다. 마음의 끌림이 그만큼 강해서였는지는 모를 일이나,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는 말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방구들 짊어지고 낑낑대지만 말고 부처님이라도 한번 찾아 가봐. 구경 삼아서 바람이라도 쏘이며 머리라도 식히면 좋잖아. 이래가지고 우짤라카노. 향화산 돌 부처님이 아주 대단하다고 하더라. 거 경치도 아주 좋고…….”

상만이의 말을 듣고도 며칠을 더 머뭇거리던 길상이가 길을 나선 것은 새벽녘에 눈을 뜬 날 댓바람이었다. 차를 끌고 네 시간을 달려서 향화산 산허리에 도착해서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산길을 한 시간은 족히 걸어서 불상 앞에 설 수 있었다. 숨은 턱까지 차고도 넘쳤다. 비행기나 배를 탔을 때 느꼈던 것처럼 속이 매스꺼운 멀미기운까지 돌면서 머리도 지끈지끈 아픈 듯했다. 산허리 춤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산길을 따라 걸어갈 때는 한 번도 쉬지 않아야 부처님의 영험을 온전하게 받을 수 있다고 했던 상만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때문에 도중에는 쉴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산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산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다리정강이도 끊어질 듯이 아팠다. 늘 다니는 사람들은 30여 분이면 거뜬하게 오른다는 곳을 곱절은 더 걸렸다.

불상 앞에 이르러서야 길상이는 헐떡거리는 숨을 겨우 진정시키고 정강이뼈를 두 손으로 감싼 채 한참을 주물럭거리다가 눈으로 가장자리를 찾아 더듬었다. 사람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간신히 그곳으로 걸음을 옮겨 절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변의 사람들이 의식돼 쭈볏댔지만 누구도 옆 사람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다는 것을 금새 눈치챘다. 다들 절하기에 바빠 보였다. 길상이도 더 이상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절을 한 번 할 때마다 염주 한 알을 굴렸다.

팔이며 목뼈까지 금새 아파 왔다. 한계점에 다다른 듯 싶은 순간을 간신히 참으며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로 염주 알을 세어보았다. 절을 한 횟수가 열여덟 번에 지나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108번은 해야한다고 했던 상만이의 말을 대수롭잖게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그제야 들었다. 이미 주눅이 들어 퍼져버린 몸은 더 이상 움직이기가 어려울 듯 싶었다. 난감했다. 이것 밖에 안 되는가 싶어 자신이 한스럽기도 하고, 여태 뭐하며 살아왔는지도 의아스럽게 생각됐다. 꽉 막힌 출구가 더는 열릴 것 같지 않아 보여 새로운 기회는 없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훤한 대낮이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암흑천지였다. 어찌 이 지경까지 오게됐는지도 모를 정도로 머리는 다시 복잡해졌다.

길상이는 더 이상 절을 하는 것은 무리다 싶어 자리를 떴다. 자신이 걸어서 올라왔던 산길이 내려다보이는 길목을 찾아 작은 돌멩이 하나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산길은 굽이굽이 휘거나 깎아지른 듯해 보기에도 아찔했다. 경사가 70도는 족히 되어 보였다. 자신이 처했던 지난날의 상황이 떠올라 고개를 떨구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회사에서 갑자기 밀려나면서 모든 의욕을 잃고 세상을 등지기 시작했던, 다시는 떠올리기조차 싫을 정도로 끔찍스러웠던 사태가 미끄럼틀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듯이 온 몸으로 엄습해 들었다. 숨이 차고 머리가 지끈거리고 다리정강이가 시리고 팔이 아프면서 비 맞은 듯 흘러내리던 땀조차 식는지 한기가 느껴졌다. 으스스하게 몸이 떨리면서 눈도 흐릿해지며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뒤덮인 산길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생물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길상이 앞으로 돌진해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들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몸이 반응하지 않으면서 옆으로 피식 쓰러지고 만 것이다. 순간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이봐요, 이봐요, 괜찮겠어요?”

어느 정도 의식이 돌아오기는 했으나, 쉬 일어나지를 못한 채 모로 누워있을 때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쪼그리고 앉아 팔이며 다리를 주무르는가 하면 몸을 흔들면서 말을 시켰다. 이름을 알 수 없으니 몸을 흔들어서라도 깨워보려고 안간힘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출구 없는 터널 속이라면 차라리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망상 속으로 빨려들었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으로 버티며 하나 남은 나뭇가지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빼고 싶었다. 손에서 힘을 빼면 나뭇가지를 놓치게 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면 모든 것은 끝이 난다.

그만도 여의치 않다는 것은 이내 알아차렸다. 길상이는 눈을 뜨고 그제야 의식을 되찾은 듯이 몸을 뒤채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주변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듯이 보였다. 어쨌거나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길상이는 민망한 순간을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연신 꾸벅거린 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없어 보이는 반대편 쪽으로 걸음을 옮겨 자리를 잡은 길상이는 가슴을 쥐어뜯듯이 스스로를 탓했다. 원하는 것을 취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것조차도 뜻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자신이 밉고 싫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해도 아쉬울 것 하나 없고, 미련도 없는데, 될 대로 돼라 하는 심정이었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길상이는 한참 후에 다시 부처님 앞에 섰다. 죽더라도 절을 하다가 죽겠다는 다짐이 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다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절을 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도 힘들었던 몸이 무엇에 떠받쳐 붕 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절을 하는 동안 팔다리가 조금씩 아파 오기는 했다. 얼굴이며 온 몸이 땀 범벅은 됐지만 금새 108배를 채울 수 있었다.

108배를 마치고 선 채로 불상을 올려다본 길상이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상은 온데 간데 없고 자신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거울 앞에 서 있는 듯이 자신의 모습이 바로 보인 것이다. 길상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하며 연신 눈을 비벼보았다. 그리고는 아직도 흐릿한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쓰러졌다가 몸은 살아났지만 의식은 살아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놀란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도저히 다 채우지 못할 것 같았던 108배를 거뜬히 해치운 데 대한 자신감 같은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두려움 반, 기쁨 반, 그야말로 황당했다. 그러나 결코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더 이상 잃을 것 없는데 뭐……’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편안하게 가지자 이내 두근거림은 진정됐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처음 해본 108배를 통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았구나 싶어 그 어떤 것을 이룬 순간보다 기뻤다.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으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