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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펄 체험

이상범(시인)   
입력 : 2003-03-18  | 수정 : 200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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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강화의 갯말 앞에 펼쳐진 개펄에 가 보았다. 물이 다 빠져나간 개펄의 크기는 여의도의 두 배쯤 되어 보였다. 연안의 가장자리엔 소금이 말라붙어 하얀 띠가 둘려 있었다. 마치 경기장의 룰을 표시한 선처럼 보였다. 그렇다. 환경보호의 구역을 표시한 경계선이자 또 하나의 청정지역의 표시이기도 했다. 또한 연안과의 접경지역엔 난쟁이 갈대꽃이 아직도 피어 있었다. 소금기 때문인지 크게 자라지는 못한 것 같았다. 개펄을 밟아 보았다. 개펄은 넓고 펑퍼짐한 큰 둔덕이었다. 물이 들어오고 빠지는 작은 계곡의 물길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물길의 물가엔 망둥어와 그 새끼들이 톡톡 튀며 잽싸게 숨는 것이었다. 생명의 도약에 한없이 싱그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신기해했다. 그러나 어디 그 뿐이겠는가. 그 너른 개펄 전체엔 빠꼼빠꼼 수 없는 숨통구멍들이 있지 않는가. 숨구멍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어느 것은 게가 사는 집, 맛살 조개가 사는 집, 딴은 갯지렁이가 사는 집이 각각 달랐다. 그곳에서 그걸 잡아 생업을 이어가는 그들은 모두 식별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구멍마다 보글보글 숨쉬는 양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너른 개펄은 지하에 조성한 하나의 동굴단지였던 것이다. 여의도 두 배 정도의 크기이니 얼마나 큰 지하 대단지인가 말이다. 여기서 나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생명의 신비를 보았던 것이다. 일종의 생명에 대한 경외와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었다. 현재 이곳 개펄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듯 하다. 휴일엔 많은 관광객들이 '개펄체험'이란 이름으로 망둥어도 잡고 조개도 캐고 하는 모양이었다. 한데 그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게 되자 원주민들과의 마찰이 잦다고 한다. 순수하고 의미 있는 개펄 체험이 행사 자체로 인해 개펄이 병들어간다면 당초의 순수성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듯 싶다. 마치 산이 좋아 산을 오른 등산객들로 인하여 산이 파괴되고 오염되어 입산을 금지하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개펄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익히고 생태계를 보존하겠다는 당초의 순수성을 잃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