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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날아가소서

김남환(시조시인)   
입력 : 2003-03-18  | 수정 : 200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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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벌써 두 번째의 기신(忌晨)을 맞았다. 나는 2년 동안 단 하루도 어머니 생각을 놓지 못했었다. 어머니의 영정 앞에 생전의 체취가 묻어 있는 염주와 천수경 그리고 반지며 수첩 등을 놓아두고 조석으로 그 앞에서 향을 피우며 북받치는 울음을 꾹꾹 눌러 삼켰다. 친구들은 하기 좋은 말로 여든 아홉이면 천수를 다하고 가셨는데 왜 그렇게도 슬퍼하느냐며 위로해 주지만 그 위로의 말이 도리어 내 아픔을 건드려 놓곤 했었다. 서른 셋의 젊은 나이에 지아비의 혼백을 안고 열세 살의 한 점 혈육을 데리고 고향을 뒤로했던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우리 모녀는 55년 간의 긴 세월을 마주잡고 갖은 애환을 함께 누볐다. 이웃의 귀감이 될 만큼 부지런했던 어머니는 그 어려웠던 6·25 사변을 겪으면서도 억척같이 돈을 벌어 나를 대학까지 보내 주셨다. 병약했던 자식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버렸던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이 지금도 뼈를 저미는 애통으로 오장을 녹여 내린다. 며칠 전에 내가 자주 찾는 출판사에 들렸다가 성우 스님을 만났다. 스님과 나는 삼십 년 전 문학동호인으로서 만나 존경해온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율사이다. 나는 스님에게 어머니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겠다고 푸념했더니 또 울음이 치밀었다. 나를 바라보던 스님은 "울고 싶거든 우세요" 하며 옆에 놓인 화장지를 한 장 뽑아 건네주며 빙그레 웃으셨다. 어머니를 그렇게 붙잡고 있으면 극락에 못 가니 놓아 드리라는 것이었다. 이틀 후 나는 어머니의 제상 앞에서 이승의 때가 묻은 인연의 끈을 풀고 어머니를 극락으로 보내 드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울음 대신 한 줄기 환희심이 솟아 온 몸을 적셔 주었다. '엄마, 이젠 훨훨 날아 극락세계 연꽃에서 편히 쉬셔요' 하고 되뇌이며 어리석은 내 슬픔을 축문과 함께 불살라 하늘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