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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는데도 답답한 이유

편집부   
입력 : 2014-07-16  | 수정 : 20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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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이고 본질적인 기능을 합니다. 공부가 필요한 것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물은 완결된 존재이며 닫힌 존재인 반면에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인 동시에 개방된 존재입니다. 축생들은 특별히 공부하더라도 다른 동물이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공부하지 않거나 다른 방향으로 잘못 공부를 하면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 이외에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미래는 닫혀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열린 존재라는 사실은 부처님의 인간존재에 대한 특별하면서 따뜻한 해석입니다.

인간의 개방성은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지금 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삶이 지금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인간 안에 긍정적, 능동적 불만이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가능성은 있으나 현실화되지 못할 때 생기는 마음의 모습이 바로 불만입니다. 자신 안에 아무런 잠재성이 없는 사람은 성취와 실현을 기대하며 불만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불만에는 긍정적 기능이 있습니다. 모든 불만이 다 바람직하거나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불만은 파괴적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긍정적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날로 새로워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불만을 긍정적으로 승화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선생님은 학창시절에 가졌던 불만을 자신이 교사가 되어 시정하는 선생님입니다. 좋은 부모님은 자녀 시절에 가졌던 불만을 자신이 부모가 되어 개선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시어머니는 며느리 시절에 자신이 가졌던 불만을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어 바꾸어 나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실상을 인정하는 가운데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현실적인 대안이란 나쁜 것들을 극복시킬 더 좋은 것들을 더욱 많이 섭취하는 것입니다. 안 좋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겪는 유쾌하지 못한 경험들이 내가 겪은 경험의 전부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이 우울한 것은 나쁜 것을 겪은 시점과 현재 사이에 밝고 기분 좋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나쁜 것들을 제거하는 것은 그릇 안에 담긴 공기를 제거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그릇을 그냥 진공상태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릇 안에 새로운 용액을 부어서 그 공기를 없앨 수 있게 됩니다. 좋은 것을 지속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이전의 안 좋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발전에 앞서서 자기 발견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합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은 내가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는 시금석입니다. 자신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공감하듯 현 시대는 물질시대입니다. 너무나도 물질에 전도되다보니 현대인은 물질이라는 근육만 혹사했지, 그 나머지 반쪽인 정신이라는 근육을 단련하는데는 너무나도 무관심했습니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마음(정신)을 발전하여 사용한다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질 수 있습니다. 불공은 지금까지 살아온 패턴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만듭니다. 내가 지금까지 안 해봤던 것을 해봄으로써 나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자진고행으로 심성의 근육을 키우지 않고서 어떻게 이 육중한 인생의 무게를 견뎌내고, 감당해 낼 수 있겠습니까?

강해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지만 부드러워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지만 져주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지만 전체의 뜻에 따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회 전체가 마치 술 취한 것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상황 같습니다. 여러 가지가 다 어려운 지경입니다. 공동체 전체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해탈되고 회복되고 성장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이럴 때 일수록 부처님의 진리로 돌아가 천착해야 하고, 그 법에 입각해서 실행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와 법의 정체성이란 물처럼 흐르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정체성을 이미 만들어져 형성된 딱딱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정체성 어딘가를 바꾸려는 다른 생각과 다른 세계는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합니다. 사람이건 어떠한 공동체이건 간에 다양한 배움을 계속하지 못하면 일단 형성된 소아적인 좁은 세계가 스스로 사고의 벽을 강화하면서 다름과 새로움에 배타적이게 만들어 놓습니다. 새로운 시도에 낯설어 하고 편견에 싸이고 소통에 인색하고 변화를 그리워하지만 또한 두려워하게 됩니다. 배움은 우리를 현명하게 만들고, 현명함은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뱉어 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믿고 신행하면 만사가 다 풀리게 되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문제가 더 많아지고 관계의 갈등과 가치관의 혼돈이 더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설적이지만 진리가 모든 삶의 모본과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믿으면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는 시각과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변화의 주체가 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다 변하고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난관의 본질은 극복의 법열입니다.

해답이 없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해답은 언제나 인과의 이치에 대한 치열함이고 수순이며, 문제를 푸는 공식은 언제나 정진을 통한 하심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것은 미래를 위하여 해답을 만들어 가는 매듭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우리의 문제 때문에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켜 주거나 불편한 것들을 없애주기보다는 당체법문을 통해 인과의 이치와 수순의 영역을 확장하게 합니다. 편하고 쉬운 인생을 구하지 말고 신행의 심화를 위해 불공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능력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맡은 일에 걸맞은 지혜를 일으키는 신행의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밀각심인당 주교 수각 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