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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에 물주는 사람

이상범(시인)   
입력 : 2003-03-18  | 수정 : 200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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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그 고비를 호되게 극복해 가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우선의 삶을 영위하다 보니 정신이나 마음엔 틈새가 비좁아져 사람다움의 윤기를 잃어가게 되었다. 결국 세상이 삭막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살맛이 안 나고 상대가 왠지 의심스럽고 신뢰감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불신의 풍조가 도처에 산재하게 되어 매사에 신중을 기하지만 결과에 늘 찜찜해 하는 것 같다. 이 모두가 인간성의 상실에서 오는 일이다. 그러나 가만히 삶을 다시 되짚어 보면 인간성의 박토에 거름을 주고 물을 주는 이가 많다고 본다. 이런 것 때문에 세상은 살맛이 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작은 선(善)을 행하는 사람이 그들이다. 이것도 의식적이기 보다 자연발생적이다. 버스나 전철에서 노인이나 장애자, 아기 업은 부녀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가 그들이다. 보기 흉한 쓰레기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는 어린이와 젊은이도 만난다. 또 학생이나 젊은이에게 길을 물었을 때, 손으로 가리키다 말고 "예, 저를 따라 오십시오"하고는 바로 집 앞까지 안내를 받았을 때, 나라의 장래가 밝아 보인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전방에 가까운 어느 읍내 마을에 장국밥집이 있었다. 늦은 시간에 병사 한 사람이 찾아왔다. 멀리서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며 오다가 그만 귀대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열차에서 지갑을 도둑맞아 예까지 간신히 도착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도착한 곳이 장국밥집이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대뜸, '막차를 놓쳤구먼… 보아하니 저녁도 못했구랴'하면서 장국밥을 꾹꾹 눌러 담아 병사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 아랫목에서 자고 새벽 첫차가 6시에 있으니 타고 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차비도 손에 쥐어 주었다. 이 같은 일은 돈이 많은 이가 아니고 서민들이 하고 있다는게 아름다웠다. 한번은 시골길에서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승용차가 오기에 손을 들었다. 그는 집 앞까지 우리를 태워주고는 자기의 행선지로 떠나갔다. 이 모두가 인간성에 물을 주는 사람이다. 이들 때문에 아직도 세상은 살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