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18

편집부   
입력 : 2014-07-03  | 수정 : 20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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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지 못하면 상(相)밖에 안 된다

“법(法)은 듣고 알기만 하여 입으로 이야기만 하고 행하지 못하면 아는 마음은 상(相)밖에 안 된다. 또 무엇을 구하는 마음은 있으나 자기 심중에 있는 모든 죄의 근본이 되는 허물조차도 못 고치고, 아들 딸 남편 잘 되게 여러 가지 자기 서원만 충족하려는 욕심에 구하는 마음만 꽉 차 있다.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은 듣기만 하고 행하려는 노력이 없으니, 어찌 좋은 공덕을 바라겠는가.”(‘실행론’ 제2편 제2장 제7절)

부처님 빽

허물어진 석축 자리에 이제는 철근콘크리트구조물이 들어서야 한다고 했다. 수만의 강변이었다. 석축보다 견고하고 영구적이라서 수십 년 동안 더 이상은 다시 쌓기를 하는 수고로움이 필요 없다는 수만의 주장에 누구 하나 토를 달지 못했다. 철근자재상을 하는 수만의 꾐이라는 것을 짐짓 눈치챈 이는 훈장이었다. 그렇다고 훈장도 수만에게 쉽사리 제동을 걸고 나서지는 못했다. 수만은 이런 때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그동안 마을회관을 찾아 과자부스러기에다 고기안주까지 온갖 것들을 자주 풀어놓았다. 마을 사람 중 그것을 한 점이라도 집어먹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만이 던져준 미끼를 받아먹었던 입으로 그의 사욕이 섞인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공짜로 얻어먹었던 것에 대한 보답을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순진하고, 남을 해할 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그러했다. 훈장도 마찬가지였다. 뒷날을 내다봐서는 당연히 수만의 생각이 그르다고 해야했지만 끝내 말을 뱉어내지 못했다. 몇 번이나 용기를 내보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목구멍으로 기어올라오던 말이 그동안 얻어먹었던 기름덩어리와 과자부스러기에 뒤범벅돼 썩어문드러지면서 소화만 될 뿐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섬목마을의 상징과도 같았던 성곽 석축은 이렇게 해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을사람들 모두가 공범자였다. 고풍스런 석축이 있던 자리에는 철근을 섞어 짓이겨 놓은 콘크리트구조물이 맨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흉터처럼 볼썽사납게 뒤덮이고 만 것이다. 수만도, 훈장도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섬목마을 성곽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몇 세대를 거치면서도 끄떡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다시 쌓기를 해야하는 수고로움이 필요 없다는 수만의 이 한 가지 말만은 맞아떨어졌다. ‘처음부터 그랬다’는 말은 두어 세대가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섬목문화원은 사설연구원들의 머리와 손을 빌어 없던 사실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전후좌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입만 빌었다. 철이 많이 생산됐던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처음부터 철근콘크리트구조물로 성곽을 쌓았다는 기록물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낯을 도려내고 덧칠까지 해댄 셈이다. 이러한 기록물들은 섬목문화원 보관자료에 그대로 옮겨져 있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창작된 이야기가 사실적인 역사물로 떡 하니 자리를 굳히게 된 셈이다.

젊은 고고학자 찬현이의 생각은 달랐다. 문화원을 찾아 자료를 살펴보면서 금새 드러난 의문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성곽의 역사에 비할 때 철근콘크리트구조물이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논리라는 상식적인 접근을 통해서였다. 성곽 주변을 샅샅이 훑으면서 지질을 조사하고 지형을 분석해본 바로 문화원의 자료가 뒷사람들의 구술에만 의존한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금새 드러날 누군가의 농간이자 날조임이 분명해 보였다. 철근자재상을 했던 한 인물의 사리사욕과 꾐에 의한 훼손사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찬현이가 이 사실을 논문으로 작성해 고고학회지에 발표하자 가장 당혹스러워 한 곳은 섬목문화원이었다. 지방문화재 등록을 위해 그동안 거금을 들여 만든 보고서가 엉터리 될 지경에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기에 사설연구원들을 다시 동원하기로 했다. 찬현이의 논문이 잘못됐다는 오류를 지적하고 조목조목 반박해달라는 제의였다. 사설연구원은 문화원에서 제시한 액수보다 더 큰 거금을 요구했다. 반박자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너스레를 떨며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어디 있냐”고 까지 하면서 허풍을 떨었다. 말이 사설연구원이지 의뢰인의 요구가 있으면 뭐든지 하고, 또 할 수 있는 집단이었던지라 그들은 찬현을 겁박하는 일부터 착수했다. 연구논문을 철회하라는 둥 노골적인 회유와 협박에 가까운 짓거리를 일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찬현의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인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설연구원에서 붙인 사람들이 집 앞에서 진을 치는가하면, 아들이 다니는 학교까지 찾아가 미행을 하는 등으로 정신적인 괴롭힘을 감행한 것이다. 찬현은 그럴수록 아들을 단속시키면서 세미나를 준비하고 언론사에도 알리기 시작했다. 완력으로, 돈의 힘으로 진실을 왜곡하려는 무리들에게 마냥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 찬현의 생각이었다. 진실은 언젠가 바로 세워진다는 이치를 찬현은 믿었다.

“법(法)은 듣고 알기만 하여 입으로 이야기만 하고 행하지 못하면 아는 마음은 상(相)밖에 안 된다.”

찬현은 이 법구를 되 내면서 힘을 내고 용기를 냈다.
“법신불의 당체대로 방편 쓰지 아니하고 세간 진실 모두 밝게 설법하신 것이니라.” “득실무착 우희부동 수미같이 안주하면 이것이 곧 지자이며 공경해도 기쁨 없고 경만 해도 진에 없이 그 지혜가 바다 같고 남의 과실 말 안하며 자기 덕을 칭송 않고 자타 없이 관조하면 대 명칭을 얻을지며 용맹으로 정진하여 일체 상을 원리하고 아만 모두 없애는 자 진실 지자 되느니라.”

자기 공 없이 남이 해놓은 것을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어느 한 가지 주제를 갖고 파고드는 연구분야에 있어서 검증되지 않은 저자거리의 이야기 삼아 떠도는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보고서로 쓴다는 것을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찬현은 사설연구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고 싶은 열망을 부글부글 끌어올리면서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만약 유위 세력으로 널리 증익 못 하거든 무위법에 주하여서 보리심만 관할지라. 불이 이에 만행 갖춰 정백하고 순정한 법 만족한다 설 하니라.”

찬현은 심인당을 찾아갔다. 혼자의 힘으로 사설연구원의 횡포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의지하고 믿을 것은 부처님 빽 뿐이라는 심정으로 심인당에 앉아 염송을 했다. 한참 뒤에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힘을 느꼈다. 이 보다 더 큰 용기는 없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권세 있는 어떤 사람의 도움도 여기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심인당을 나섰다.

“박찬현 선생님.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 들여 지방문화재 신청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저희 문화원에서는 지방정부와 논의해서 철근콘크리트구조물 성벽을 걷어내고 원상복구 하는 방안도 연구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연구결과에 존경을 표합니다.”
찬현이 심인당을 나서면서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켜자 장문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참으로 빠른 효과였다. 찬현은 부처님 빽을 새삼 실감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