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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월호!

편집부   
입력 : 2014-06-18  | 수정 : 201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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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충격적이고 어이없는 일이다.

누구의 불행을 논하기에도,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에도 도대체 그 의미를 찾지 못할 지경이다. 설령 의미를 찾은들 우리 모두의 간절한 염원과 달리 그 애처러운 희생이 되돌려 질 수 없음에 다시 한번 긴 한숨과 함께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군다.

우리의 충격이 컸던 만큼 사회적, 국가적 파장도 엄청났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 안타까워한다고, 후회한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고 추스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까?
우선은 사고의 수습이 원만히 잘 마무리 되고 아울러 모든 희생자분들의 왕생극락을 기도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희생자 가족에게는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하며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중중제망(重重帝網)의 연기론적 이치로 볼 때, 굳이 ‘동업중생’이라고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번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나는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대자의 저허물은 내허물의 그림자라” 상대의 허물을, 고통을 통해서 내 자신의 허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님은 연기의 이치를 자성론(自省論)적으로 말씀하셨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고통에서 우리 모두의 치부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때로는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하고, 수시로 어쩌지도 못하는 끝모를 탐욕심의 발동은 금전만능주의, 성과제일주의, 그리고 과정의 진실성과 중요성을 무시한 목적지향주의의 큰 허물덩어리들을 만들었고, ‘작재심앙재신 불수원소갱우인(作在心殃在身 不須怨訴更尤人) 즉, 지음은 마음에 있으나 재앙은 몸으로 받나니, 모름지기 사람을 원망하고 허물하지 말지어다’ 의 경구처럼 이 허물덩어리들은 현실로 나타나서 재앙을 만들어 버렸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고 하였다. ‘발밑부터 살펴라’는 말씀으로 항상 지금의 자리에서 자신을 돌아보라는 선지식의 가르침이다. 어느 순간이라도 우리는 실상같이 우리의 마음을 알아서(如實知自心)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지심으로 참회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고의 원인과 수습과정, 책임론 등의 문제로 들끓고 있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정말이지 세상을 뒤엎겠다는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이러한 불화(不和)가 또 다른 재앙임을 알아야한다.

원인규명과 책임론이라는 미명하에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여 서로 헐뜯고 싸우는 모습은 올바른 해결과 수습이 아니라 탐욕심의 노예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모두의 허물의 결과임이 분명하지만, ‘나비효과’의 이론에서 알 수 있듯이 적도 부근의 나비의 날갯짓이 주위로 파급되어 급기야 큰 태풍을 일으켜 우리나라에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끼쳤다고 나비를 원망할 수 없는 것처럼 상대의 허물을 찾아서 탓하기만 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음이다. 어떤 일이든지 모든 현상은 단순히 한 두가지만으로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부처님께서는 연기(緣起)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연기라는 것은 결국 모두가 원인제공자이고 책임자라는 말과 같다.

열매 속에는 씨앗이 잉태되어 있는 것처럼 세월호의 수습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진실한 자기 참회를 통해서 자비와 사랑, 이해와 포용이라는 지혜로운 열매를 만들어 낸다면 이 열매 속의 씨앗이 언젠가는 우리에게 안락과 행복이라는 더 달콤한 열매를 안겨줄 것이다.

“시간이 약이다”라고 한다. 많이 가슴 아픈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잊혀진다는 뜻이다. 세월호 사건도 차츰 사람들에게 잊혀져 갈 것이다. 세월이 가면 잊혀진다는 말은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법(法)의 도장(印)을 찍으셨다. 그렇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변하게는 할 수 있다. 지혜로운 선택으로 먼 훗날 달콤한 열매로 변하게 하자.

선혜심인당 대원 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