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화로 본 회당사상 9

편집부   
입력 : 2014-04-01  | 수정 : 201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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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大覺)을 이루다


대종사의 득병은 세간생활에서 출세간 생활로 인도하는 인연계기였다. 그 때문에 병세를 잡기 위한 현실적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치병을 위한 노력에 전력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대종사의 수의를 짓고 있는 어느 날 한 인척(姻戚)이 집에 들어서 농림촌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곳에 병고해탈을 위한 수행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종사는 절대 거절하였다. 그렇지만 원정각 스승님은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농림촌의 길목이 되는 내당동에 좋은 의원이 있으니 한번만 가보자고 대종사에게 간청하였다. 대종사는 그 간절한 청에 못 이겨 따라 나섰다. 그 때가 음력 10월 그믐이었다. 대종사가 내당동에 이르자 그 의사는 왕진을 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대종사는 기운을 차리기 위해 논두렁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그러자 원정각 스승님이 여기까지 왔으니 바람을 쏘일 겸 농림촌에 한 번 가보자고 청하였다. 그래서 농림촌에 이르렀다. 대종사가 조용한 길가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원정각 스승님이 두 번에 걸쳐서 그 수행자의 수행처를 찾았다.

농림촌은 대구시 서쪽 달서구 감산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농림촌에서 대종사의 수행처를 지어준 이종석(李鍾錫)에 의하면 농림촌은 본래 허허벌판이었다.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들어 농토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동네를 형성한 곳이었다. 그리고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냥 농림촌으로 불려졌다. 그런데 농림촌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하는 한 수행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석은 자신의 인척이 되는 그 수행자에 대한 상세한 내력을 알고 있었다. 그 수행자는 본래 경산 진량 사람으로 대대로 전래의 민간 비법(秘法)을 수행하는 박씨 가문의 딸이었다. 그래서 가문의 비전(秘傳)을 전수 받은 그 수행자는 새로 형성되고 있는 농림촌을 찾아서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진 수행력으로 동네사람들의 어려운 일들을 돌봐주면서 상당한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수행자를 속칭 관심보살(觀心菩薩)이라 불렀다. 그것은 그 수행자가 관세음 염불을 빠르게 하는 소리가 마치 '관심'(觀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후에 그곳이 대구시 달서구 감산1동 41-4번지가 되었다. 

원정각 스승님이 수행자의 거처를 찾아서 돌아오자 대종사는 조용히 길을 거닐고 있었다. 평소에 먹기 어려워하던 미음을 모두 들고 편안한 모습으로 논둑길을 오가고 있었다. 대종사는 그 수행처에 도착하자 관심보살이 반갑게 맞으면서 법당으로 인도하였다. 대종사가 예를 갖추려고 하자 만류하고 "큰 인물이 오실 줄 알았다"라고 하면서 아랫목에 좌정하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대종사에게 큰 예를 올리려 하자 이번에는 원정각 스승님이 만류하였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관심보살은 아주 환희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약을 쓰지 말라는 등 몇 가지 조언도 하였다. 대종사는 대화를 나누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대종사가 관심보살과 만난 광경은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집에 돌아와서 며칠을 보낸 후 대종사는 그 곳에 머물 준비를 하여 농림촌에 갔다. 이때가 늦가을 음력 동짓달이었다. 농림촌에서 대종사는 관세음염불로 49일 정진을 하였다. 정진 중에는 관심보살에게 관세음염불 등 불법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다. 관심보살은 가문의 비전을 전수하였지만 불법에 대하여는 식견이 없었다. 심지어 관심보살의 '관심'(觀心)이 자신이 수행에서 얻은 신주(神呪)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대종사는 관심보살에게 불법(佛法)을 바르게 전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후일에 대종사는 관심보살의 수행에는 사(邪)가 많았다는 말씀을 한 것으로 보아서 확인할 수 있다. 대종사는 49일을 끝내고 관심보살에게 자신은 육자진언의 염송으로 정진할 것을 전하였다. 그리고 육자진언 염송으로 100일 정진을 시작하였다.

대종사가 육자진언으로 100일 정진을 시작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첫째 대종사는 관심보살과 농림촌을 대각과 중생교화의 중요한 인연계기로 삼았다는 점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길목에는 항상 어떤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대종사의 생애와 수행에서 득병은 세간생활을 정리하고 농림촌에 가도록 한 계기가 되었고, 그로 하여금 농림촌과 관심보살이 계기가 되어 최후의 정진과 대각, 그리고 중생교화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인생의 계기는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인연계기라 한다. 인생은 인연계기를 소중하게 여기고 잘 활용해야 삶을 잘 개척할 수 있다. 그래서 대종사는 후일 대각과 교화의 인연계기가 되어준 관심보살에 대하여 각별하게 관심을 가졌다.

둘째 관세음 명호염불을 중단하고 육자진언의 염송을 한 점이다. 대종사는 육자진언과 언제 인연을 맺었을까? 이에 대하여 대종사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유추할 수밖에 없다. 농림촌에서 49일 관세음 명호염불을 하면서 육자진언을 마음속에 떠 올린 것으로 보인다. 사적(邪的)인 요소가 담겨 있는 관심보살의 관세음 명호염불을 정도(正道)로 돌리기 위한 궁구 끝에 육자진언을 마음에 떠올린 것이다. 그래서 관세음의 명호가 아니라, '관세음보살의 미묘본심'인 육자진언 염송을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종사는 이미 그 전에 육자진언을 인연하였으나,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49일불공 중에 육자진언을 새롭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대종사가 이러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구법정진 중에 불교의 불성사상에 큰 관심을 가진 까닭도 있었다. 대종사는 육자진언을 구법정진 중에 자연스럽게 인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죽림사 불공 중에 만났을 것이다. 그래서 대종사는 육자진언을 수행의 기본법으로 삼아서 대각을 하고 또한 교화의 중심교설로 삼은 것이다. 

대종사가 100일 정진을 시작한 것은 음력설을 지낸 후였다. 100일 정진을 위해 토담집을 지어준 이준석은 땅이 얼어서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그 해(1947) 음력설은 양력 1월 22일이었다. 대종사의 대각일이 100일 정진의 이튿날 5월 16일인 것을 감안하면 양력 2월초에 100일 정진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곧 대종사가 전해(1946) 늦가을에 농림촌에 가서 며칠을 보내고 49일불공을 시작하고, 다시 49일불공을 회향한 후 설이 겹치고 집을 짓는 등의 사유로 얼마간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대종사의 100일 정진에는 모친이 함께 하였다. 대종사의 건강을 무척 염려한 모친은 49일불공으로 병세가 크게 호전되자 아들의 정진에 동참하여 곁에서 보살핀 것이다. 대종사는 정진 중에 무염식(無鹽食)을 하였다. 대종사의 100일 정진은 몇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대종사는 처음 고성염송의 정진을 하였다. 그리고 대종사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였다. 동참한 사람이 고성으로 육자진언의 염송을 하였다고 이종석은 말하고 있다. 농림촌에서 대종사와 함께 정진을 하고 후에 보원심인당에서 수행한 구 보살도 같은 내용을 전하였다. 그리고 대종사는 100일 정진 중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불법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여러 전언에 의하면 대종사는 회향 13일 전부터 몇 가지 수행영험을 보였다. 대종사는 염송정진 중에 낙루(落淚)를 하면서 울다가 말문이 막히고, 안면과 몸이 부어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종사의 정진은 계속되었다. 말문이 막혀서 심송(心誦)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참한 사람들도 더욱 용맹정진 하였다. 그리고 대종사는 대각 한 주간 전부터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고 연필로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였다. 무엇인가 정확하지 않는 발음을 하면서 처음 '도'(道)를 쓰기도 하고, 대각 4일 전에는 완전한 발음을 하면서 '정도'(正道)를 노트에 쓰면서 말문이 열렸다. 그 때 동참한 사람들도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환부가 터지는 등 여러 신이(神異)현상을 보였다. 따라서 대종사가 이처럼 정진 중에 겪은 심신(心身)의 체험은 대종사의 대각과정을 보여주는 심비(深秘)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대종사는 100일 정진을 회향한 익일(翌日·5월 16일) 육자진언의 묘리(妙理)가 터득되고, 심신(心身)이 상연(爽然)하여 지며, 일체의 이치가 밝게 내관(內觀)되면서 심중(心中)에 환희심이 충만하였다. 그리고 문득 동천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불은(佛恩)이 무변하고 천지(天地)의 은혜가 지중하게 느껴지면서 홀연히 대각을 성취하였다. 그 날이 5월 16일 대종사의 대각일이다.(계속)

kyungjung.jpg 경정 정사 / 진각종 기로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