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16

편집부   
입력 : 2014-03-17  | 수정 :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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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아서 실천해야 되는 진리


"사람의 제일 목적은 심인을 깨쳐서 생멸 없이 삼세와 시방세계에 자유자재하는 것이다. 심인진리는 깨달아서 실천해야 되는 진리이지 의뢰적인 진리가 아니다. 모든 공덕은 자신의 실천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돈을 주고 사는 것도 누구에게 얻는 것도 아니다. 오직 부처님의 법으로 진실하게 배워서 깨닫고 실천해야 진리의 묘득을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심인진리는 아는 마음과 구하는 마음으로는 얻을 수 없고 진리를 깨닫는 교이므로 실천교라 한다."('실행론' 제2편 제2장 제5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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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원 정사



(콩트)의심 없이 믿고 행해야


"부처님이 설한 말씀 모든 사람 몸을 받되… (중략) 큰 부자가 되는 자는 대시하고 난 것이며…."

부부는 이 말을 지극히 믿었다. 그리고 열심히 행했다.

부부가 이 말을 믿고 실천하게 된 것은 결혼하기 전부터 서로가 비슷하게 짊어지고 온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두 사람 모두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끼리끼리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처지가 비슷하다는 같은 믿음으로 결혼까지는 했지만 좀체 삶이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결혼을 했으니 자식들도 태어날 것이고, 그들의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생활이 필요하다는데 생각을 같이 했다. 자기들이 겪었던 힘든 생활을 자식들에게만은 더 이상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서 밤낮 없이 일을 했다. 비록 조그만 구멍가게이기는 했지만 두 사람 입에 풀칠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을 위해서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잠자는 시간도 줄여야 했다.

부부가 아무리 먹고 입을 것을 아끼며 불철주야 가게를 지켜도 물건을 많이 팔지 못하면 이윤이 적은 것이 구멍가게이기에, 문제는 손님이 많이 찾아들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잡화를 파는 구멍가게에 더 많은 손님이 찾아들도록 하는 방법은 필요한 좋은 물건을 많이 구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돈의 회전에 있다. 게다가 대형 마트가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동네 구멍가게의 입지는 점점 좁아들었다.

"물건을 많이 팔아야지요? 그러려면 물건을 떼로 갈 때 그 날 떼어올 전체 물건값의 1할을 따로 떼어놓았다가 좋은 일에 써보세요. 떼어온 물건이 한결 잘 팔리는 것을 알게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1할 만큼 물건을 적게 떼어 왔다고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 날 떼어온 물건을 남김 없이 다 팔고 보면 오히려 남는 장사가 될 것입니다."

부부가 어렵사리 가게를 지탱하며 연명해 갈 무렵에 찾아온 한 사람이 해준 말이었다. 부부는 약간 의아해하면서도 그 사람이 해준 말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마트에 갈 시간이 없어서 왔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가까운 곳에 좋은 물건이 많아서 자주 오게된다는 사람도 하나 둘 불어났다. 부부는 그 사람이 다시 찾아올 때를 기다리며 전해준 말을 그대로 행했다.

*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사인이도 마찬가지다. 사인이는 부자가 돼도 한방에 돼야 한다고 믿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탓이었다. 그렇다고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한방만 터트리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한 푼 두 푼 모으고 아껴서 부자가 되겠다는 작정은 아예 하지를 않았다. '짧은 인생, 한방만 터지면…' 하는 소신을 접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방으로 터져 줘야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에 받았던 그동안의 서러움과 울분마저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겠다는 욕심이 발동됐던 것이다.

복권 한 장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사인이는 늘 그랬던 것처럼 '한방이야'라는 말을 주문과 같이 외우며 컴컴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불 속에는 냉기가 똬리를 틀고 들앉아 있는 듯 했지만, 새로 산 복권 한 장을 지닌 몸에서는 부푼 기대가 발화돼 열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몸밖의 냉기와 몸 안의 열기가 이불 속에서 뒤섞이자 청하려던 잠은 달아나고 배고픔도 멀찍이 물러나 있어 보였다. 사인이는 조금 더 자려고 했던 생각을 접고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커서를 움직였다. 홈트레이딩서비스에 집중했다.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정도로 몸을 책상에 바짝 붙이고 윗몸을 더 밀어붙여 눈알을 바쁘게 움직였다. 금새 눈이 충혈된 듯 하며 침침해지기까지 했다. HTS증후군으로 앓게된 것이다. 사인이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창 밖을 내다보자 옆집 사는 부부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다지 돈이 있어 보이지 않는 부부가 쌍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금슬 좋은 비익조처럼 보일 때만은 부럽기도 했다.

*

부부는 이날도 심인당에 들러 염송을 하고 다시 집에 들렀다가 자원봉사활동을 하던 복지관으로 가던 중이었다. 동갑내기인 부부는 나이 60이 되면서 편의점을 접고 신행생활을 하는 틈틈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구멍가게를 탈피해 편의점을 수십 년 간 운영하다가 그마저 놓아 버린지도 벌써 제법됐다.

"그 때 언젠가 왜, 나한테 했던 말 있지 않나? 1할이 뭐 어쩌고저쩌고 하던 말……. 그 어떻게 하면 된다꼬? 다시 한 번 말해봐라."

부부가 사인이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막 대문을 밀치고 나오던 그가 느닷없이 길을 막아서며 계면쩍어하다가 불쑥 내뱉은 말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 열 살은 맞먹는다며 사인이는 부부 앞에서 늘 말을 놓았다.

"와? 인자 어지간히 답답한가보네. 그 생각을 다 하고……."

"……."

"욕심을 먼저 버리라. 이 사람아. 자네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안 될끼라, 아마. 그라고 요행을 바라는 그게 문젠기라. 한방에 해결하겠다는 그 생각부터 고쳐 무야 되네. 알겠능가?"

"사람, 참……."

"욕심도 버리고, 요행도 버릴 자세가 돼 있거든 잘 들어라."

부부와 헤어진 다음 방으로 들어간 사인이는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1할이 어딘데, 하는 마음으로 의심만 하다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리 큰돈은 아니고 하니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막상 마음을 그렇게 내고 난 뒤에도 대문 앞에서 부부가 들려준 말이 영 석연치가 않아 한참을 더 곰곰이 곱씹다가 각으로 된, 뽑아 쓰는 화장지 곽 하나를 비워냈다. 그리고는 아침에 샀던 로또 값의 1할인 1천 원을 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화장지 곽에 1천 원을 간신히 밀어 넣었다. 손에 검어 쥔 돈을 누군가가 빼앗으려 할 때 그 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바들바들 떨던 심정으로 한참을 붙들고 있다가 힘에 부쳐 놓치듯이 겨우 놓았다. 아쉬움은 여전했다. 돈이야 화장지 곽 안에 든 것이라 당장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뭐, 하는 마음이 들자 그제야 부부의 말을 일단 믿어보기로 하고 1할을 따로 떼어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방'을 기대하면서…….

*

부부는 사인이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생각하고 계획했던 일이 되고, 안 되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믿고 노력하는데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부부는 묵묵히 봉사활동을 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