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15

편집부   
입력 : 2014-02-17  | 수정 :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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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과 향상


"깨달음이란 무엇을 깨닫는 것인가? 첫째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음이요, 둘째는 심즉불(心卽佛)을 깨달음이요, 셋째는 법계법신불과 자성법신이 하나임을 깨달음이니라."('실행론' 제2편 제2장 제4절 가)

"마음의 주체성이 우주만물에 미치므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한다. 일체유심조란 마음이 환경을 만든다는 뜻이므로 방편으로 남을 복되게 하면 내가 복되게 된다. 삼계는 유심소현(唯心所現)의 모형이다."('실행론' 제2편 제2장 제4절 나)

"향상(向上)이란 생명의 실상(實相)을 개현(開顯)하는 것이다. 우주를 움직이는 힘과 내 속에 살고 있는 힘이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세우는 것은 법계에서 세우지 않고, 사람이 세우지 않은 것은 법계에서 세우게 된다. 중생이 있는 곳에 부처님이 계시며 복잡한 곳에 부처님이 계시는 것을 알아야 그것이 대승적이며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부처님을 존중할 줄 알게 된다."('실행론' 제2편 제2장 제4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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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원 정사




(콩트)마음이 환경을 만든다


진이는 초조했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시간은 그야말로 쏜살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눈으로라도 훑어봐야 할,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학습분량은 넘치고도 남아돌았다. 학습진도는 나가지 않고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갔다. 새벽 3시를 넘어서자 또 잠은 쏟아졌다. 그렇지만 쉬 잠 속으로 빠져들 수도 없는 실정이라 답답하기만 했다. 포기를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무시로 드는 바였지만, 이번 시험만은 그르칠 수 없는 절대절명의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절박함은 더했다.

진이는 머리를 쥐어뜯다 말고 가슴이 먹먹한 지경에 이르러 밭은기침을 토해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시작으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급기야 마른기침까지 뱉어내면서 몸 안팎이 쌍으로 괴로웠다. 진이는 고개를 들어 창문가로 멍한 시선을 보내다가 책상머리 책꽂이 앞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고통을 이겨내는 명예는 크다.'(몰리에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헬렌켈러)

진이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진이의 주변정리 습관은 머리가 복잡해질 때마다 하는 버릇 중의 하나다. 계획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멍하게 앉아 있을 때도 진이는 언제나 주변정리부터 했다. 주변이 말끔하지 않거나 어수선하면 좀체 가만있지를 못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이 몸에 밴 습성이었다. 주변정리에 온 신경을 쏟아 붓다 보면 그 순간만큼 골머리 아픈 일 정도는 잊어버리는 나름대로의 효과를 노린 행동인지는 모를 일이다.

진이의 이러한 습성은 어릴 적부터 비롯된 것이다. 타고난 체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일이었다. 그래서 진이가 어릴 시절, 그러한 생각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어머니는 뜻하지 않게 속앓이를 많이도 했다. 진이가 학교를 가거나 방을 비운 틈을 타 청소를 하다가 방안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흩트려 놓았을 때는 여지없이 반응이 왔다. 옷걸이며, 심지어 책상 위에 있는 노트 한 권까지도 처음 있었던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을 경우에는 까탈을 부리며 차라리 청소를 하지말라고 몰아 부치곤 했다. 심지어 연필 한 자루라도 있던 자리에 있지 않고 옆으로 비껴나 있거나 흩으러 뜨려져 있었다가는 성질이 날카로워질 대로 사나워져 눈조차 맞추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진이의 방과 책상을 청소할 때마다 온갖 신경이 쓰였던 것은 그 때문이다. 진이는 몸에 걸치는 옷가지 하나까지도 무조건 가지런해야 했다. 단추구멍을 메운 실밥이 아래쪽으로 가지런해야 하는 것 정도는 약과였다.

*

각이는 달랐다. 남매가 달라도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어머니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각이의 책상 위는 언제나 너저분했다. 책이며 볼펜이며, 입었다가 벗어 둔 옷가지가 뒤섞여 아수라장이 달리 없었다. 다시 입을 옷과 세탁을 해야할 옷이 뒤엉켜 분간도 안 될 지경이 허다했다. 옷걸이에 걸어 둔 옷마저 제대로 정리돼 있는 적이 드물었다. 거꾸로 걸쳐져 있거나, 아니면 반쯤 걸쳐져 있기 마련이라 웬만큼 정리정돈을 해주어서는 표도 나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다. 각이의 방을 들락거리며 갖게 된 것은 한숨뿐이었다. 이불과 베개며 옷이 뒤섞여 나뒹구는 방바닥도 상황은 마찬가지라, 모처럼 큰마음을 먹으며 청소를 하려고 들어갔다가 혀를 내두르며 서둘러 방문을 닫고 나와야 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경계가 너무 분명해서 탈이었던 진이와 달리, 각이의 경계가 없는 듯한 생각과 마음은 헤아리기조차 힘든 영역처럼 자리했다. 상상을 초월한 경지를 수더분하다거나, 털털하다고 인정하기에는 정도가 심했다. 아들과 딸의 차이정도로 치부해버릴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려면 차라리 경우가 바뀌어야 맞는 것이다 싶을 정도로 아들인 진이의 유별함에 비해 천연덕스러움과 너저분하기까지 한 각이의 일상은 도무지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보였다. 진이와 각이 남매의 어머니가 애 끓이는 바로 그 점이었다.

매사 자로 잰 듯 한 성격을 가진 진이가 일탈적이기까지 한 각이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지만 각이에게 '잔소리쟁이'로 통했던 진이가 여동생 앞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학교 성적이었다. 각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안을 뒹굴뒹굴하는 듯 하면서도 성적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았다. 늘 우등생인 각이가 진이를 주눅들게 만든 무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

도랑물에는 잔 나뭇가지 하나가 떠다녀도 쉽사리 드러나기 마련이다. 깊고 넓은 바닷물에는 웬만큼 큰 물체가 흘러들어도 쉬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흘러든 물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환경을 만드는 법이기 때문이다.

진이는 주변정리 하던 손길을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집을 벗어나 인접한 큰길로 나서자 넓은 도로가 바닥을 드러내고 엎드려 있는 듯 했다. 주황색 실선까지 확연하게 드러낸 4차로 넓은 길바닥이 적나라하게 보인 것이다. 새벽녘이라 길 위를 달리는 차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드문했기에 길바닥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도 그랬을, 길을 가득 메운 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달리던 차들이 잦아드니 도로가 평정을 찾은 듯했다. 순간 차들은 도로의 번뇌덩어리로 생각됐다. 번뇌가 걷히니 근본자리인 도로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듯해 보인 것이다.

진이는 그 순간 드넓은 길 위를 쏜살같이 지나쳐간 승용차 한 대를 얄미운 눈길로 좇다가 승용차가 사라진 길 끝 지점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온통 캄캄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길이 머문 그 곳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닐 터였다. 어둠이 걷히면 그곳에 있던 건물은 건물대로, 도로는 도로대로, 나무며 각종 식물들도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진이는 희붐하게 밝아 오는 새벽 길 위에서 벅찬 전율을 느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그동안 마음 한 가득 들어차 있으면서, 생각이며 몸의 움직임까지 좌지우지했던 번뇌덩어리의 실체를 파악한 기분이었다. '몰라서 당하지, 알면 당할 일이 없다'는 말로 공부하고 글읽기를 타일렀던 할머니로부터 어릴 때 들었던 말이 되새김됐다. "그래, 이 놈 때문이었구나. 이 놈을 잡아야지." 진이는 결심했다.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니다 싶었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저로 말미암아 어머니까지 힘들게 했던 깔끔 떠는 병만 다스린다면 헛된 시간낭비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진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다짐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