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역설의 미학

편집부   
입력 : 2014-02-17  | 수정 : 2014-02-17
+ -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이것은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서정주의 시 '견우의 노래'에는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두 시구의 공통점은 논리에 어긋나는 표현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할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매순간마다 변화하고 있어 고정된 실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작가는 우주의 신비와 세계의 질서를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언어의 질서를 깨뜨려서라도 그것을 표현하려 합니다.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바로 '역설'입니다.
꽃은 피어날 때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얼마 못 가서 시들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탐스런 열매가 자리 잡습니다. 꽃은 꽃을 버려야 비로소 꽃이 됩니다. 여기에 역설의 미학이 스며듭니다. 언뜻 보면 모순된 사고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이 발상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필자는 27년 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여러 유형의 학생들을 경험했습니다. 그 중에서는 입학할 때에는 말을 잘 듣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뻗대며 따라오지 않는 학생도 많았습니다. 이런 학생들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지도해도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던 중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에서 정신과 의사의 재미있고 기이한 처방을 만났습니다. 그 때 번쩍 떠오른 것이 역설적 접근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문제행동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원인을 살폈으며, 단점을 지적하는 대신 장점을 찾아 칭찬해주었습니다. 또 상처가 깊은 학생들에게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마음 근육을 키워주었습니다. 그렇게 이끌어주었더니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고쳐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역설은 삶의 자리를 넉넉하게 만들어줍니다. 뒤집어보고 거꾸로 맞서다 보면 어렵고 복잡한 문제도 뜻밖에 쉽게 풀릴 때가 있습니다. 화살을 앞으로 멀리 보내려면 활시위를 뒤로 세게 당겨야 하는 법입니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늘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환한 웃음을 선물하고,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칭찬과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며 꼭 안아주면 어떨까요?

김종두 /심인고 수석교사,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