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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맛!-초마면(炒碼麵)의 힘

편집부   
입력 : 2013-12-16  | 수정 :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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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대표적인 국민 먹거리인 짬뽕의 표준어 표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바에 따르면 초마면(炒碼麵)입니다. 이때 초(炒)는 '센 불에 순간적으로 볶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높은 온도에서 빠른 시간에 순간적으로 요리할 때 우러나오는 독특한 감칠맛이 바로 '불 맛'입니다. 어떤 요리는 '불 맛'이 필요합니다.

불 맛을 보완해 주는 맛은 '시간의 맛'입니다. 이 맛은 은은한 장작불에 48시간 푹 고아서 만들거나 간장, 된장 등 각종 장류(醬類) 또는 김치 등 오랜 숙성기간을 통해 우러나온 맛입니다.

시간의 맛을 드러내는 레시피가 은근과 끈기라면, 불 맛을 돋게 만드는 인생의 양념은 열정 아닐까요. 우리 신행생활도 불 맛을 봐야할 때가 있고, 시간의 맛을 봐야할 때가 있습니다.

평생 변하지 않는 신심으로 뚝심있게 신행을 이어가는 우리 진언행자들은 은근과 끈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뜨거운 불에 진짜 불 맛을 봐야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언제 우리가 증득의 맛을 보았는지를 돌이켜 보면 은근과 끈기의 시간의 맛을 통해 성취가 일어난 때도 있었지만 진짜 벼랑에 선 듯한 느낌을 갖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한 원력으로 불공했을 때 공덕의 진미를 맛보았습니다.

뜨거운 열정을 갖고, 불퇴전의 신심을 통해 용맹정진으로 역경을 헤치고 나가는 원력의 불 맛! 이것이야말로 신행의 불 맛 아닐까요. 요즘 우리에게 이러한 정신이 결여된 것 같습니다.

불공을 통해 우리의 업장은 소멸되어 갑니다. 물로 녹여야 할 업장이 있듯이, 불로 사루어야 할 업장도 있습니다. 사람의 근기가 백인백색(百人百色)이듯이 업장의 지중함과 고질성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러하기에 해법으로서의 방편을 지혜롭게 구사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스승의 지중한 소임 중 하나는 신교도가 지금 불 맛을 봐야할 때인지, 시간의 맛을 봐야할지를 지혜롭게 판단하여 발심의 원력을 일으키도록 독려함과 동시에 스승도 공히 마음 일으킴에 동참해서 다같이 불공의 불꽃을 태우는 것입니다.

불 맛이 깊이 배어든 음식을 먹을 때 일어나는 우리 몸의 변화는 온 몸에서 흘러나오는 땀입니다. 용맹정진의 불 맛을 본 진언행자는 마치 자기 몸의 모든 모공이 확 열려 그 안에서 토해내듯 참회의 진땀이 흘러 넘쳤을 때, 스스로의 고질적인 숙업도 더불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굳건하게 닫힌 마음 문은 커녕 내 용맹의 땀구멍조차 열지 않으면서 어찌 내 업장이 바뀌기를 서원한다고 공언할 수 있을까요.

될 듯 될 듯 하면서 안 되는 때는 불 맛을 봐야 합니다. 서원이 클수록 결단도 커야 합니다. 불공은 결단입니다. 강도부만 제출하고 사람은 보이지 아니하는 불공이 우리를 나태와 방일로 몰고 갑니다. 우리의 불공은 양(量)을 늘리기 위한 불공이 아닙니다. 질(質)을 바꾸는 불공입니다. 세간은 양을 늘리라고 부추기고 있지만, 우리 불공의 본령은 질이 바뀌는 정진입니다. 질이 제대로 바뀌었을 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공덕이 바로 양입니다. 증상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체질이 바뀌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질이 바뀌지 않고 이루어진 증득은 산발적이고 일시적인 공덕입니다. 생각의 질이 바뀌고, 태도의 질이 바뀌었을 때, 비로소 삶의 질이 바뀌게 됩니다.

질을 변화시키는 방편 중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뜨거운 열정과 용맹으로 업장소멸의 불 맛을 보고자 하는 시도의 결여입니다. 지금은 열정이 사그러드는 시대입니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는 식의 냉소주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풍요의 시대가 가져다 준 필연적인 부작용이지요. 우리는 너무 배불러 있었습니다. 너무 채워져만 있었습니다. 간절함이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대서원불공이야말로 우리가 잠시 간과하고 망각했던 신행의 생명력의 원천인 용맹정진의 야성을 일깨우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를 통해 공덕성취의 진미를 만끽하는, 법락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서원합니다.  

밀각심인당 주교 / 수각 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