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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리 늦었는가,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다*

편집부   
입력 : 2013-12-03  | 수정 : 201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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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은점산에 있다는 황둔사지를 향한 그날 아침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황둔사지까지 가는 길은 계곡을 끼고 길게 이어져 마을 두어 개쯤을 지나쳐 갈 때까지 계속 오르막이었습니다. 팍팍해진 다리를 두들기며 시선을 돌리면 주위는 온통 만산홍엽으로 그득했습니다. 일부러 시기를 맞춘 것도 아닌데 뜻밖에 주어진 눈의 호사였습니다. 마침내 도로 구간이 끝나고 맞닥뜨린 것은 격에 맞지 않은 석조물로 경내를 가득 채운 절이었습니다. 입구에는 돌하르방이, 또 몇 걸음 걸어가면 불상이, 다시 시선을 돌리면 달마대사가…. 슬며시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길 양옆은 온통 대나무 숲이었습니다. 늦게 떠오른 햇살이 언뜻언뜻 대숲 사이로 비쳐들고 조붓한 오솔길 위에는 온통 낙엽들이 서걱거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토록 극명한 색의 대비를 본 게 언제였을까요. 이틀째 폐사지를 돌면서 허허롭기만 하던 마음에 온기가 스민 듯 했습니다. 이렇듯 사람보다 풍경에 기대어 받는 위로가 더 푸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제 본성이 미욱해서 그런 건 아닐테지요. 그만큼 자연이 가진 치유의 힘이 큰 탓일 겁니다. 

호젓한 오솔길을 버리고 가파른 산길을 이십 여 미터쯤 올라갔을 때 폐사지라면 예고편처럼 나타나던 당간지주 하나 없이 황둔사지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허물어진 삼층석탑 두 기만 남아서 말이지요. 창건연대가 확실치는 않지만 신라 선덕여왕 2(633)년에 약사상을 만들어 안치하고 황둔사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폐사된 시기는 18세기쯤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지금은 다만 주초석이 남아있는 법당터와 석탑 두 기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탑이 자리한 위쪽에 자리한 법당터는 빽빽이 자란 대나무로 인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들어갈 방법이 없을까 싶어 기웃거려보다 대숲을 뒤로하고 풀밭에 주저앉아 한참을 그대로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절집이 품고 있는 적요의 풍경들이 정말로 아늑하게 느껴져서 폐사지가 아니라 부처님 계신 법당에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탑은 무너진 대로 늦가을 햇살에 환히 빛나고 탑의 파편들 위에 돌꽃이 곱게 피어 있는 것까지 저는 그보다 아름다운 헌화공양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탑은 무너진 그 상태가 오히려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것이 본래의 모습인 것처럼 천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그것이 탑을 조성한 이들이 염원했던 궁극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비록 전각은 무너지고 법등조차 꺼진지 오래지만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었을지…. 누군가 찾아와 들여다봐 주고 옆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뜻밖에 힐링을 하고 돌아가는 그 길을 배웅하는 그 마음은 또 얼마나 뿌듯하게 차 오를 것인지….

그때 문득 탑 안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 그리 늦었는가,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지던지 가슴이 녹아 내리는 듯 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탑 위에 귀를 바짝 대보았지만 그 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 말이 이지누님의 폐사지 답사기행서에서 읽은 구절이었다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강릉 굴산사에서 선법을 펼치던 통효(通曉) 범일에게 낭원(朗圓) 개청이 깨달음을 구하러 찾아갔을 때 범일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날 제가 거기까지 간 것은 그 한마디를 되새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을지. 그 고맙고도 기쁜 여정이라니…. 우연히 시작된 일이지만 제 폐사지기행은 오래 이어질 것 같습니다.

*이지누 글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에서 인용

김혜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