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12

편집부   
입력 : 2013-09-02  | 수정 :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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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중심이다"


"내 자성이 법신임을 깨달아야 대도(大道)를 얻게 된다. 마음 가운데 두고 말하자면 심인이며 밖에다 두고 말하자면 도솔천이다. 우주에 진리가 전기의 성품과 같이 충만하여 있으니, 전파가 있더라도 수신기가 있어야만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심인상도(心印常道)가 있더라도 심인진리를 활용하지 않으면 인증을 할 수 없고 활용을 못한다. 따라서 진리에 들어간 사람은 이와 같이 된다."('실행론' 제2편 제1장 제1절 다)

"나와 심인과 비로자나부처님은 한 덩어리가 되어 대(對)가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중심이다."('실행론' 제2편 제1장 제1절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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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원 정사



(콩트)세상을 넓게 사는 법


누군가가 여닫이 교실 문을 열려고 애쓰는 듯 했다. 진호의 등교가 늦는다 싶어 연신 교실 문 쪽을 살피던 진이는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가 진호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리고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데 문 여는 동작이 어찌 다른 때와 달라 보였다. 힘들게 문을 여는 듯 하더니 한참 뒤에야 교실로 얼굴을 들이민 사람은 진호가 맞았다. 진호는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목발을 하지는 않았지만 동작은 많이 느렸다. 진이는 문 앞까지 좇아가 진호를 부축해서 자기 옆자리에 앉는 것을 도왔다.

"어떻게 된 거야? 괜찮다고 했잖아."

"……."

"당했구나."

"……."

진호는 첫 번째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다가 거듭된 진이의 질문공세에 겸연쩍게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진호는 화장실에 가는 것 외에는 하루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진이가 부축하는 것을 마다했다. 창피하다는 것이었다. 진호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야 하는 수 없이 진이의 부축을 받았다. 진호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말까지 절룩거렸다. 평소에는 누구 못지 않게 말이 많았던 그 수다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미안하다. 너 오늘 야자 못해서 어떡해?"

진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진호를 부축하며 교실을 나섰다. 진호가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지경에 야간자율학습은 의미가 없을 듯 했다. 이 핑계로 하루를 쉰다는 마음에서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야간자율학습 담당 선생님도 충분히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쁜 마음으로 교무실로 달려가 진호를 부축해서 집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그건 그렇고, 그래도 그렇지. 너무했다. 이 정도로까지……."

"괜찮아. 이만하기에 됐지 뭐. 부러지지 않은 것만도……."

진호가 다리를 절뚝거리게 된 것은 동네대항 축구시합 때문이었다. 진호는 고등학생으로서는 유일하게 A동네 조기축구회에 가입해 뛰고 있었다. 진호네 동네와 옆 동네 조기축구팀이 지난 번 시합에서 맞붙어 싸울 때 진호가 상대편 선수에게 좀 심한 태클 걸었다가 앙갚음을 당한 것이다. 재 시합에서 상대편 선수들의 표적에 걸려든 것이었다.

진이는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축구를 할 줄 모르는 진이로서는 진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재 시합을 하는 날 축구장으로라도 가보려 했지만 마침 집안에 일이 있어 가보지도 못했다. 축구시합이 끝났을 즈음 전화만 했었던 것이다. 그 때 진호는 아무 일 없다고만 했다. 그런데 진호가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고 나타난 것을 보며 진이는 가슴을 쳤다.

"진아, 비켜!"

초등학교 3학년 체육시간 칼 비명을 지르며 진이를 덮친 것은 진호였다. 운동장 한 쪽 씨름장에서 씨름수업을 하고 있을 때 축구공 하나가 진이를 향해 날아들 때였다. 모래판 주변에 앉아 있던 진호가 날아오는 축구공을 잡으려고 몸을 던졌다. 진호는 그 공을 온 몸으로 받으며 모래판에 철퍼덕 엎어졌다. 진이와 씨름연습을 하던 두 사람은 진호에게 튕겨 나가면서 진호 옆으로 널브러지며 나뒹굴었다. 날아온 축구공이 진이의 머리에 맞았다면 기절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 아찔한 순간을 진호가 지켜준 것이었다.

진이로서는 잊을 수 없는 그 '씨름판 축구공' 이야기를 진호는 그 다음부터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능청을 떤다. 진호는 그 일을 그 자리에서 잊어버린 듯 했다. 진이가 마음 속에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진호는 이내 머릿속에서 떠나보낸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당하고 보니까 내 태클에 걸렸던 그 선수가 얼마나 아프고 억울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시합에서도 졌잖아. 미치겠지. 어제는 뛰지도 못하고 깁스를 한 채 운동장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그가 눈에서 떠나지 않더라."

진호는 시합이 끝나자마자 다리를 절뚝거리며 그 선수에게 다가가 다시 한 번 더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다친 것은 괜찮다고도 했다는 것이다.

"진아, 좀 쉬었다 가자."

진이의 부축을 받으며 걷던 진호가 힘에 부치는지 학교 옆 아파트 분수대 앞에 다다르자 쉬었다가자고 했다. 진이는 진호가 먼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부축을 하고, 분수대 난간에 철퍼덕 엉덩이를 내려놓으며 진호의 아픈 다리 바지를 걷어올렸다. 깁스를 하지 않았다.

"병원에도 안 가봤나 보네."

"괜찮아. 이만 일로 뭐……."

"집에서는 알고 있나?"

"아냐."

"첫 시합할 때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적으로만 보여지며 밉기만 했는데, 내가 너무 좁았던 것 같아. 시합을 할 때는 물론 그래야 하겠지만……."

"그렇지. 윗동네, 아랫동네, 결국은 이웃동네고, 넓게 보면 한 지역인데……."

"맞다. 그러니까……."

"야, 너 대단해 보인다. 다리 다치더니 한 소식 한 사람 같아."

"나보다 더 대단한 건 진이 너지. 넌 벌써 알고 있었던 거잖아."

"아니야. 씨름판 축구공 사건도 그렇고 확실히 진호 네가 나보다는 넓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잖아. 자기 일이 아니면 잘 나서지 않잖아. 그런데 너는 네 일이 아닌데도 나서기를 좋아하고, 또 좋은 일 한 것은 금새 잊어버리니 너야말로 나보다 한 수 위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도 되겠지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그만큼 세상을 넓게 산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좁디좁은 생각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자기가 아닌 모든 것은 남이고, 남의 일일 수 있겠지만, 좀더 넓고 큰마음과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보이는 모든 것이 자기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진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마음이 좁은 사람은 그만큼 생각이 넓지 못한 탓이리라 여겨지자 진이는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진호가 생각의 넓이를 키우는 만큼 자기 중심을 넓혀가며 세상을 넓게 살고 있다는 믿음이 서자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진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이었다. 용수철처럼 몸을 퉁겨 올리며 몇 걸음을 내달렸다. 이내 다리를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수레에 폐지를 가득 실은 할머니가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곳까지 진호의 걸음으로는 한참이나 걸렸다. 모든 일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영역을 확장해 가는 진호는 아무도 못 말릴 친구였다. 주변의 상황을 자신의 중심으로 끌어 들여 영역을 확장하는 전사, 그래서 진호가 더 커 보였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