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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옳게 쓰면 해탈

편집부   
입력 : 2013-08-19  | 수정 : 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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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물질만능시대이다.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생활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며 살아간다. 물질의 소유욕과 욕망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사람들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겠는가. 하지만 홍수처럼 넘쳐나는 물질 때문에 우리들의 삶에 멍에가 들기도 한다. 그러기에 옛 성현들께서는 물질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모습에 한탄과 경책으로 버려라, 내려놓아라 말씀하신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불을 좇는 불나방처럼 물질에 전도되어 점점 더욱 깊이 빠져들고, 물질 없이는 잠시라도 살아갈 수 없을 지경이다. 마음을 비우고 마냥 내려놓자니 불안하여 괴롭고, 갖고자하면 이루지 못해 괴로운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 집안에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자신의 재산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우고 또 모우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버려야 될 물건도 아까워서 처리하지 못하고 구석구석에 쌓아두고 있는 것들이 많다. 욕심이 극에 달하면 쓰지 못하는 물건도 자기의 재산의 일부인 냥 모아두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모아 두기만 하면 나중에는 집안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인연조차 없을 것이다. 고이면 섞는다는 말이 있듯이 멈추고 쌓이면 고통이 될 뿐이다.

이것은 삼독오욕으로 습관된 모습이니 가난의 인이 되고 고통 가운데 살게 될 것이다. 진각성존께서는 육행결과편에 "세간사람 누구라도 간탐하는 마음 있다"라고 하시며 이 간탐심은 "단시로써 도탐하고 인색함을 다스려라"고 하신다. 그러면 "모든 고통 물러가고 구경해탈 되다"(실행론3-6-1)라고 밝혀놓았다.

종조께서는 보시와 희사, 그리고 단시를 같은 개념으로 보는 부분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뜻을 각각 다르게 설하신다. 간단하게 말하면 보시는 베푸는 것이라면 희사는 사무량심 즉 자비희사를 말하며 단시는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뜻이 담겨있다. 희사고를 보시함이라 하지 않고 '희사고' 또는 '단시고'라 명칭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진각성존께서 "부처님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각(覺)이라 하고 두 마디로 말하자면 자비희사라 할 수 있다"(실행론2-1-2)라고 하셨고, '진각교전' 서문 '불교는 우리의 풍토성과 혈지성에 맞는 것'에 보면 "국조 단군님께서는 불교이념인 홍익인간의 뜻을 넓게 펴시고 불교정신을 심어서 몸소 행하시어 배달민족의 자손만대에 영원히 전하셨으며, 또 그 호를 단군이라 하신 것은 분명히 불교를 상징하신 것이니 즉 단월, 단가, 단도 등은 모두 불교를 말한 것이요. 단(檀)은 여섯 가지 성불에 단바라밀 보시로써 성불한다는 뜻이 된다는 것을 볼 때에 성조 단군께서는 불교의 단바라밀 정법을 세워서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하신 것은 이 나라의 풍토성과 장래 이 나라 민족의 혈지성을 잘 아심이니"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각성존께서 단시불공이라 하신 것은 단순하게 베푸는 차원이 아닌 일체중생을 널리 유익하게 하는 동시에 성불하는 수행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을 잘 다스리는 법을 세워 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질이 원활하게 소통되면 재물은 뜻과 같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우리는 지금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실행할 때 그 진가는 나타날 것이다. 생활 속의 불교, 불교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것은 크고 어려운 것을 큰마음으로 한꺼번에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능히 할 수 있는 작은 것이라도 자주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고로 진언행자가 해탈하려면 일상생활에 좋고, 나쁜 인연들이 일어날 그때그때 마다 단시로써 다스려 간다면 좋은 결과는 자연 이루어질 것이다. 물질 옳게 쓰는 법 잘 배워서 우리 모두 해탈합시다.

증혜 정사·낙산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