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사설

밀교신문 370호 사설

지현 주필   
입력 : 2002-11-04  | 수정 : 2002-11-04
+ -
군승문제와 무위법 대처 군승문제로 빚어진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의 폭언관련 양 종단간의 불협화음이 조계종 총무원 수석부장인 총무부장 원택 스님의 진각종단 방문과 효암 통리원장의 정대 스님 답방으로 대화를 통한 진정국면을 맞고 있다. 한국불교사상 정화가 아닌 포교방식 문제로 종단간 대립 양상으로 비화된 이번 사태가 양 종단 지도부간의 슬기로운 대처로 전화위복의 기회로 반전된 것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고, 유사한 사태에 대해서도 좋은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화되고 다변화되는 사회에서 같은 불교 종단이라고 해도 종지 종풍이 다른 입장에서 종파간의 불협화음과 상반된 견해는 언제든지 표출될 수 있다. 특히 의식과 포교를 생명으로 하는 종교단체의 생리에 따라서는 정체성에 관한 논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건의 경위가 어떻든 대화를 통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에서 그동안 종단간의 오해와 군승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적지 않았음이 발견되었다. 문제는 대화다. 그런 문제를 예방하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종단협의회인데, 종단협의회의 올바른 중재역할이 더욱 기대되는 것이다. 종단협의회는 무조건적인 외연확대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대표성을 가진 종단간에 명실상부한 위상과 협력체가 구축될 때만 그 역할과 소임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군승문제를 대화를 통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풀어가기로 한 만큼, 조계종은 진정한 대표종단과 대승의 입장에서 포용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며, 진각종은 군승문제의 본질이 포교방식에 대한 견해차가 아니라, 군승의 자격, 즉 종단의 성직자가 아닌, 불자 학생들의 사관복무 참여에 있다는 인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만큼, 좀 더 체계적으로 조계종단을 설득하는 자세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고 보아진다. 회당 대종사께서 설하시지 않았던가. '만약 유위 세력으로 널리 증익 못하거든 무위법에 주하여서 보리심만 관할지라, 불이 이에 만행 갖춰 정백하고 순정한 법 만족한다 설하니라'고. 굳은 땅에서 물이 괸다고 한 옛말이 있듯이 이번 군승문제가 현교와 밀교, 출가와 재가종단간에 상호 신뢰와 이해를 도모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북한 핵문제 슬기롭게 대처해야 북한의 핵 개발 사실 시인이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6·15 공동선언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최대의 과제로 추구해온 현정부로서도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은 곤혹스런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시각에 따라서 북한의 핵 개발은 제네바 북미협정의 위반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안보를 크게 위협하는 중대한 사태로 결코 안일하게 대처할 사안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핵 개발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고, 북미간 제네바협정 위반 부분도 미국 역시, 경수로 사업이 지연되고, 미국의 경제봉쇄조치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구책일 수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한반도의 위기와 모처럼 조성되어 가는 남북한간 교류와 협력체계가 또 다시 단절될 수 있는 핵 개발이라는 점에서 민족 구성원 모두는 우려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문제 해결은 한·미·일 정상간에 합의한 바대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간 불가침 조약이나,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의 선 개발 포기는 좀처럼 접점을 찾기 어려운 것이기에, 우리의 입장이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지금은 테러와의 전쟁이나 이라크 사태로 북한에 대해 대화와 평화적인 해결을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의 입장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에 미국의 그릇된 판단이 오히려 한반도의 위기를 초래하지 않도록 남북교류를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포기해도,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를 계속해야 한다. 북한의 포기는 곧 우리 민족의 공멸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한반도의 위기를 제어하는 가장 좋은 방책은 남북한간의 교류와 협력, 민족의 신뢰밖에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