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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편집부   
입력 : 2013-06-03  | 수정 : 201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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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연구실에 있던 군자란이 6년 만에 꽃을 피웠다.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을 것 같았던 군자란에 꽃대가 오르고 짙은 다홍색 꽃이 화려하게 활짝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한 달 정도 내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6년 전에는 5년 만에 핀 군자란을 보면서 그 때도 참으로 행복해 했었다. 처음 군자란을 받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생일선물로 받았던 것 같다. 그 군자란이 연구실에서 5년 만에 개화를 했고, 그로부터 6년 만에 개화를 했으니, 적어도 11년 이상은 나와 동고동락한 셈이다.

5년 전, 그 당시에는 5년 정도 끌고 있었던 일본 소설 번역을 탈고한 상태여서 더더욱 뜻 깊게 생각했었다. 그때 군자란을 보며 "내가 5년 동안 번역에 매달리는 동안, 너는 꽃 피울 생각을 했었구나"하며 내 작업의 결실과 개화를 동일시하며 다각적으로 의미를 부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6년 만에 핀 군자란을 보며 처음으로 "어떻게 꽃을 피울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명의 경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특별히 애정을 갖고 가꾼 것도 아니다. 그동안 한 번도 분갈이를 해주지도 못했다. 추운 겨울에도 행여 얼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면서 이리 저리 자리를 옮겨준 것도 아니고, 오로지 창가에 두고 가끔씩 화분의 흙이 말랐다 싶으면 물을 준 것 밖에 없다. 꽃이 져도 늘 푸른 잎을 달고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식물이어서 내다 버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군자란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군자란은 처음에 씨를 뿌려 꽃이 필 때까지 4∼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반 그늘지며 바람 잘 통하는 곳에서 잘 가꾸면 1년에 한 번씩 꽃이 피는 식물이란다.
놀라운 사실은 1년 만에 꽃이 피던, 5년 만에 꽃이 피던, 군자란은 끊임없이 꽃을 피우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음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물론 꽃을 가꾸는 쪽도 마찬가지로, 꽃을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꽃이 피겠지 하고 기다려만 준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꽃이 핀다는 점이다.

내가 누군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고 기다려만 준다면 반드시 그 결실이 나타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기다려 주자. 결실이 맺기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늘 변함 없는 자리에서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려 보자. 1년 만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씨를 뿌리고 있겠거니, 싹을 틔우고 있겠거니, 꽃을 피우고 있겠거니, 열매를 맺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겠거니, 하며 믿고 기다려 보자.

그래, 기다려 주자.

이정희·위덕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