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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몰랐어요

편집부   
입력 : 2013-05-15  | 수정 : 201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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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살고 있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큰 물고기에게 묻기를 "사람들이 바다 얘기를 자주 하던데 바다란 게 뭐예요?" 연륜이 있는 큰 물고기가 대답했다. "네 주위에 있는 게 바다야." "그런데 왜 안보이죠?" "바다는 네 안에도 있고, 네 밖에도 있어. 너는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돌아가지. 바다는 마치 네 몸처럼 널 감싸고 있는 거야." "어… 어…!"

장자 말씀에 "물고기는 물의 존재를 잊고, 사람은 도(道)의 존재를 잊고 산다. 사람은 선(禪)의 바다 속에 살면서도 선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 구절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행은 미래의 눈으로 보면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이란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층층시하의 맏며느리가 있었다. 위로는 시할머니와 시부모님, 아래로 연년생의 천방지축 아들 둘, 남편 일터의 종업원들 해서 많은 식구들이 북적이며 살았다. 한 달 밥쌀이 한 가마니가 부족했으니까 신혼의 단꿈은 잠시 뿐이요, 하루세끼 식순이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교직에 계시는 시아버지 도시락 반찬 고민도 매일 해야하고, 시할머니 방엔 출근하다시피 매일 놀러 오시는 동네 할머니 4∼5명의 간식 마련 등 끝이 안 보이는 고해바다, 그야말로 망망대해에서의 항해가 시작된 것 같았다.

요즘은 영식이하고도 살고, 한식이하고도 살고, 두식이, 삼식이하고도 살아가는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당연히 영식이라고 한다. 영식이는 가정에 돈은 벌어서 가져다 주는데, 집에서 밥은 한 끼도 안 먹는 사람이다. 한 끼 먹는 사람은 한식이, 두 끼 먹는 사람은 두식이, 세끼 다 먹는 사람은 가장 대접받지 못하는 삼식이다.

예전에 그에게는 어찌 그리 삼식이 하고만 사는지 하루 중 주방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시절이었다. 부부만 단출하게 살고 있는 친구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친구의 편안하고 자유로운 생활이 그에게는 언제쯤 돌아올 것일까? 그것은 요원한 희망사항인 듯했다. 날마다 변함 없이 지겨운 일상생활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먼 과거가 되어버린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 질 때도 있다고 한다.

어느 날 불공한다는 이름으로 49일 동안 심인당으로 외출을 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오전 8시 30분 경 아이를 업고 집을 나와 심인당에 도착하여 불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오후1시 30분이 된다. 불공하러 다니는 일상이 익숙해져갈 무렵이었다. 하루는 불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 하늘과 땅의 대 합창이 울려 퍼지는 듯 했다. 한 줄기 바람은 초록의 너울거림으로 한바탕 춤사위가 시작되고, 맑은 하늘엔 솜구름 몇 조각이 아름다운 조명을 대신하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이렇게 아름답고 넓은 무대가 또 있을까! 마음속의 감탄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먼 산의 경치는 그의 가슴이 되어 만물을 감싸 안고 있는 듯 했다. 보이는 모습, 들리는 소리가 모두 대자연의 향연이요, 오직 그를 위한 몸짓인 것 같았다. 다리 밑으로 내려 다 보이는 강물은 햇살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광채를 발하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 물결을 따라 송사리 떼들이 사랑스럽게 재롱을 떨고 있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몸짓 하나 하나가 환희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길가에 아이를 따라 나온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뒹굴고 있는 모습은 그의 눈을 더없이 즐겁게 해 주었다. 시외버스에 올라타니 버스기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승객들의 훈훈한 미소와 인자해 보이는 노인들의 푸근함이 그를 위하여 모두가 대 합창의 멋진 무대를 꾸며주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시할머니를 비롯하여 식구들이 모두 그를 위한 후원자들이었다. 기쁨과 환희에 가득 찬 시간들이 그를 은혜의 향기로 취하게 했다.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가 없었다. 법계의 과분한 사랑은 열흘 가량 지속되었다. 꿈을 꾸듯이 인생의 황홀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그 후 천지의 대 합창은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불평과 짜증이 섞인 일상으로 다시 물이 들어 버린 것이다. 중생심의 오염된 때가 묻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한 번 환희로운 그 세계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경계는 오지 않았다. 소박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고 한다. 그 때는 몰랐어요, 마음 문이 열려있었다는 것을….

서원가를 부를 때마다 깊이 공감하는 가사가 있다.

"♪마음의 문 열린 자는 그대로가 법문일세∼♬"
"♪님의 마음 나의 마음 본래가 하나로세∼♬"
법계의 마음, 법신 부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란 것을 그 때는 몰랐어요!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세계가 바로 나의 마음이란 것을 그 때는 몰랐어요!

심원지 전수·불정심인당 교화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