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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논문의 기준

편집부   
입력 : 2013-04-15  | 수정 : 201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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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졸업논문이 없어지기 시작한지 오래다. 많은 대학에서 졸업논문 대신에 외국어 성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졸업인증기준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래도 필자는 학생들로 하여금 졸업논문을 고집하고 있다. 그리고 해마다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졸업논문작성법'을 강의시간에 특강 형태로 실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많은 대학교 강의는 담당 교수에 의해 이루어진다. 강의 위주 과목이든, 발표 위주의 과목이든 담당 교수의 수업계획 하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졸업논문은 테마 설정에서부터 자료수집과 정리, 논증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논문지도교수가 배정되어 있지만, 학생들 각자가 주역인 셈이다. 따라서 졸업논문 작성은 대학교육에서 얻은 지적능력을 총결산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대학교육이 취업위주의 교육에 더 비중을 두다 보니 졸업논문의 중요성을 잘 인식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을 통해 통합적 사고 및 논리적 표현능력을 졸업논문을 통해 나타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요즘 들어 부쩍 석사논문을 비롯하여 박사논문이 몸살을 앓고 있다. 누군가는 논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객관성, 치밀성, 정확성, 공평성, 독창성 등등을 운운하지만, 심사하기에는 다분히 주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전공은 일본문학이다. 일본유학 시절 지도교수로부터 박사논문의 기준에 대해 철저히 교육받았다. 우선 박사논문 기준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첫째 새로운 해석, 둘째 새로운 이론, 셋째 새로운 자료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할 작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선행연구 검토다. 아무리 잘 쓴 논문이라도 선행연구 검토 없는 논문은 논문으로 인정을 하지 않았다. 선행연구 검토야말로 자신의 논문의 독창성을 확보하는 길이 되므로 선행연구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논문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앞서 행한 연구자들의 연구를 정리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다 보면 자연히 출처를 밝히게 되고 인용문으로 처리를 해야만 한다. 이 단계에서 이미 논문표절 등은 감히 상상도 못하게 된다. 이러한 선행연구 검토 위에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이 요구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아무리 좋은 해석이라도 이미 누군가가 제기한 논리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선행연구 검토를 대충 할 수가 없다.

위의 세 가지 기준 중에 첫 번째 기준인 새로운 해석이 충족이 되면 졸업논문으로 인정이 되며, 새로운 해석과 더불어 새로운 이론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게 되면 석사논문으로 인정이 되었다. 박사논문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여기에 박사논문 인정조건이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박사논문 중에 논문 주제와 관련 있는 기존의 저명한 학회에 구두발표를 하고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 적어도 5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논자의 논리가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이 한 편도 없는 박사논문을 박사논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좋은 논리라도 검증되지 않은 논리는 논리로서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필자가 박사논문을 쓴지 어언 20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그 작업은 뼈를 깎는 고통의 순간 순간이었다. 펜 끝으로 종이에 생채기를 내듯 써 내려가는 작업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날, 지금은 세상을 달리한 친정어머니가 "그래, 정말 박사가 되었구나"하셨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책만 읽은 필자에게 "커서 뭐가 되려고 저렇게 책만 읽으니… 박사가 될 거니? 뭐가 될 거니…"하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불러주신 대로 박사가 되었으니, 박사 소리만 들어도 어머니 생각이 난다. 오늘은 박사논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한껏 어머니를 회상에 보았다. 그리울 뿐이다.

이정희 / 위덕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