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3

편집부   
입력 : 2012-12-29  | 수정 : 201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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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내 마음에 본래 갖추어진 불심인


내 마음에 본래 있고 다른 데서 못 얻으니
이 때문에 그 이름을 부전(不傳)이라 이름하니
삼매왕(三昧王)인 불심인(佛心印)은 글과 말로 못 전하고
심(心)의 본구(本具) 점시(點示)함을 전했다고 말함이라.

회당대종사께서 심인의 "심(心)은 불(佛)이요, 인(印)은 인증(印證)"이라고 했으니, 심인은 곧 부처님이 인증하신 마음이다. 이는 곧 불심인이며 불심인은 삼매왕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심인은 또한 나의 심인과 다른 것이 아니다. 회당대종사께서도 "심인은 나에게 있는 부처를 말한다"고 하였고, 위에서도 "내 마음에 새겨 있는 불심인"이라 했으니, 나의 심인이 곧 불심인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회당대종사께서 실증하신 것을 전한 것일 뿐, 각자가 깨치기 전에는 나의 심인도, 불심인도 별도이다.

회당대종사께서 실증하신 것을 전하심으로써 중생의 심인이 곧 불심인 임을 이치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을 이해한다고는 하나, 아직 각 중생에게는 그러한 상태로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므로 중생은 깨치기 전에는 불심인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여기에서 진언행자는 수행을 해야 하는 당위성이 생긴다. 결국 심인은 말과 글로 가르쳐 줄 수도, 전할 수도 없으며, 각자가 본래 갖추고 있는 심인을 스스로 깨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삼매왕인 불심인은 내 마음에 본래 있어서 어디 딴 곳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본래 갖추어진 것을 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므로 부전(不傳)이라 하고, 단지 본래 갖추어 있음을 가리켜 보임[點示]으로써 전했다고 할 뿐이다. 여기서 가리켜 보인다[點示]는 것은 심인을 밝혀 보인다는 의미이다. 심인을 밝혀 드러난 것이 곧 전해 받은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회당대종사께서 법(法)을 부촉하는 유언(遺言)에 "옛날에는 의발(衣鉢)이요, 이제는 심인법(心印法)이라" 한 것이다. 

정상말(正像末)의 흥폐(興廢)있는 현교(顯敎)와는 정히 달라
밀(密)은 상주불변(常住不變)이라 때가 없고 가림 없네.
죄업중생 위하여서 평등하게 설(說)한 고로
부끄럽고 그른 마음 없게 함이 계행(戒行)이라.

다라니불교는 정상말의 흥폐 있는 현교와는 달라서 때가 없고 가림이 없다.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진리는 상주불변이어서 시간과 공간과 중생을 가리지 않는다. 그에 맞추어 그러한 진리에 다가가는 다라니 지송방편 또한 때와 가림이 없으며, 단지 죄업중생을 위해서 평등하게 설해진 가르침이므로 누구든지 실행할 수 있다.
실천수행은 계정혜(戒定慧)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실천수행은 먼저 계행을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계행이란 부끄럽고 그른 마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에는 참(慙)과 괴(愧) 두 가지가 있다. 참은 자신의 본심과 부처님의 가르침, 즉 교법(敎法)에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괴는 세간의 법과 도덕에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또한 진언행자로서 참은 자신의 본심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물론 회당대종사의 가르침에 부끄러워하는 것이며, 괴는 세간의 법과 도덕은 물론 종단에 면면히 전해 내려온 불문율(不文律)에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마음 그 자체는 선한 마음에 해당한다. 다만 부끄러운 일을 행하고도 부끄러운 일인 줄을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체하고 지나치는 것은 계행에 어긋나는 것이며 악업을 쌓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부끄러운 마음 없게 함이 계행"이라 한 것은 자신의 본심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회당대종사의 가르침, 그리고 세간의 법과 도덕과 종단의 불문율에 비추어 부끄러운 마음이 없도록 하는 것이 계행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점에서 진언행자는 수행에 임할 때 먼저 표면적으로 드러나 스스로 알고 있는 부끄러운 일에 대해서 참회를 먼저 하고 진언을 염송해야 한다. 또한 염송하는 가운데 마음이 밝아지면서 부끄러운 일이 상기될 때에도 참회를 하고 나서 염송해야 한다.

그른 마음은 바른 마음과 상대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른 마음 없게 함이 계행"이라 한 것은 먼저 바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계행이라는 뜻이다. 빛이 깃들면 어둠은 사라지는 것과 같이, 그른 마음은 바른 마음을 가지게 되면 스스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여 그른 마음을 일으켰을지라도 그른 마음임을 알아차린 바로 그때에 희사와 염송으로 참회함으로써 바른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진각교전 응화방편문 8 '계행'에서는 열 가지 악을 나열하고 있다. 이러한 열 가지 악은 짓지 말아야 하며 지었을 경우에는 이에 대해 참회하는 것이 계행임을 나타내고 있다. 몸으로 짓는 것으로 무자살생(無慈殺生), 비리투도(非理偸盜), 외색사음(外色邪淫) 등이 있으며, 입으로 짓는 것으로는 거짓 망어(妄語), 꾸민 기어(綺語), 이간양설(離間兩舌), 모진 악구(惡口) 등이 있으며, 뜻으로 짓는 것으로는 간린탐심( 吝貪心), 함독진심(含毒瞋心), 사견치심(邪見癡心)이 있다. 진언행자는 항상 몸과 입과 뜻으로 짓게 되는 이러한 열 가지 악을 경계하여 바른 마음 지니는 것을 계행으로 삼아야 한다. 육자진언 염송을 통하여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모든 행이 삼밀이 되도록 하고, 삼밀수행으로 육자선정에 들 때에 염혜력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자진언 염송은 먼저 부끄럽고 그른 마음 없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하겠다. 나아가 진언염송은 일상생활 속에서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행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송을 통하여 본심을 밝힌다는 점에서 불교 진각종을 생활불교, 실천불교라 한다.

실행론심화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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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도원 정사

(콩트)박제된 개미 눈뜨다


거대한 건물 외벽이 숨을 쉬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혼수는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잘 지어진 초현대식, 최첨단 건물이라도 그렇지, 외벽이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따름이었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찰나의 당혹스러움 앞에서 혼수는 습관대로 왼손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안경 밑으로 밀어 넣고 눈 가장자리를 문질러 눈곱을 떼어냈다. 눈은 그러기 전보다 시원한 듯 하며 크게 떠졌다. 안경을 콧등 위로 밀어 올리며 건물 외벽을 다시 살펴보았다. 조금 전까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앉아 있었던 PC방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바깥세상이 생경스럽기까지 했다.

혼수는 간밤 동안 한숨의 잠도 이루지를 못했다. 세상 근심은 모두 다 끌어안고 살아가는 어느 성자처럼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다가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되는 일 하나 없이 이냥저냥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허무맹랑한 공상만 늘어났다. 되는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생각대로 되는데, 안 되는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된다는 사실이 한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되는 사람은 또 사람을 끄는 재주도 있지만, 안 되는 사람은 그나마 모여 있던 사람도 흩어버리는 오물덩어리 같은 존재처럼 생각돼 스스로가 몸서리 처지게 싫었다. 그러한 자신을 자조하게 되면서부터 혼수는 실팍하게나마 남아 있던 자신감마저 잃어버렸다. 그야말로 '재수에 옴 붙은' 인생이라고 치부하게 되면서부터 인생은 더 꼬여드는 듯 했다. 반죽된 꽈배기 틈바구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가 미처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꽈배기와 함께 튀겨져버린 개미인생을 떠올리기까지 했다. 대학 졸업 후에 취직을 못하고 빈둥거리는 이가 한둘이 아니건만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가 불안해 머리 속은 온갖 불길한 생각으로 가득 차 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우울증까지 걱정해야할 형편이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심각한 정도가 이미 도를 넘은 듯 했다.

혼수는 아침에 집을 나서자마자 PC방을 찾아들었다. PC방은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음이 달뜨지 않게 짓눌러 주는 어두컴컴한 실내분위기도 좋았다. 빈 좌석을 확인한 다음 컴퓨터를 로그인하고 돈을 지불하면 누구에게도 침범 받지 않을 혼자만의 세상으로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그 때문에 PC방은 혼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사이버토피아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혼수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짜여진 일과를 좇아가듯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아이콘을 뒤져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순간 무기력한 느낌이 들면서 순식간에 의욕이 떨어졌다. 보통 두세 시간은 족히 하던 게임이었는데도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제어되지 않는 찰나의 감정이었다. 혼수는 이내 게임사이트를 닫아버리고 다시 바탕화면의 아이콘을 살피다가 광고배너로 떠있는 운세모음사이트를 찾아 클릭했다. 무료 운세사이트가 몇 개 달려 있었다. 게임은 몰라도 이런 것에까지 사이버머니를 투자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돈을 들이지 않고 입에 맞는 떡을 구하기 어렵듯이 늘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이 또한 되는 일이 없는 일 중의 하나였다. 역시 돈이 필요했다. 직장은커녕 변변한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지 못한 주제에 돈타령도 한두 번이지……. 삶이 지겹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으로 찾아 들어간 사이트는 구인구직사이트였다. 일자리는 언제나 널려 있었다. 그러나 딱히 마음이 동하는 일자리는 없었다. 왼 손으로 턱을 괴고 실망이 가득 실린 흐릿한 눈으로 사이트를 내려보던 중에 새로운 사이트가 하나 떠올랐다.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스르르 눈이 감기면서 까딱하고 고개를 떨구는 찰나 마우스를 쥔 오른 손 검지에 힘을 실었던 모양이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들고 눈을 크게 떴다.

'내 마음에 본래 있고 다른 데서 못 얻으니/이 때문에 그 이름을 부전(不傳)이라 이름하니/삼매왕(三昧王)인 불심인(佛心印)은 글과 말로 못 전하고/심(心)의 본구(本具) 점시(點示)함을 전했다고 말함이라.'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혼수는 다시 졸리는 상황을 주체하지 못하고 컴퓨터 책상에 머리를 박고 눈을 감았다. 구인직종에 맞춰 아흔 여덟 번 째 고쳐 쓴 자기소개서가 잠결에도 나타나 머리 속을 헤집으며 떠 다녔다. 평소에는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또렷하게 기억됐던 자기소개서 문구가 잠들기 전 방금 본 사이트의 글과 혼용이 돼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꽈배기 속에서 박제된 개미 꿈까지 꾸다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다시 눈을 뜬 혼수는 어떻게 찾아졌는지도 모르게 눈앞에 떠 있는 사이트의 글을 속없이 읽어보았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를 정도였으나 짧은 글이라 몇 번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읽는 맛이 느껴졌다. 마치 안개가 걷히면서 그 뒤에 버티고 서있던 산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 속살을 보여주듯이, 이 글에는 매력이 있어 보였다. 한자어투와 생전 처음 대하는 용어들이라 뜻은 감조차 잡을 수 없었지만, 묘하게 눈길을 끄는 마력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다. '맛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16년 여간 다닌 학교에서는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이상한 생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몽롱하던 정신도 맑아지는 듯 하고, 눈꺼풀에 짓눌려 침침하던 눈도 밝아진 듯 했다. 이상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몸이 더워지는 듯 하면서 글 아래 덧붙여 있는 해설도 보이기 시작했다. 중생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어려운 말은 몰라도 누구에게나 태어날 때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는 온전한 것이니, 뭐니 하는 말들은 이해가 되는 듯도 했다. 스스로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며, 스스로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누구나 가진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분수대로 주변과 어울려 살아가라고 덧붙여서 한 말에도 마음이 동했다.

순간적으로 달아올랐던 몸의 열이 삽시간에 가라앉으면서 허기가 몰려왔다. 몸은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바닥으로 연착륙 해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PC방을 나선 혼수는 비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어둑신한 바깥풍경과 맞닥뜨렸다. 그 순간 건물 외벽에서 연출되고 있던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이다. 건물 외벽에서는 연말연시를 기념해 치장해 놓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눈을 현혹시켰다. 혼수가 마주하고 있는 건물 외벽은 불빛을 뿜어내고 있는 대형 꽃 문양이 2열 종대로 붙어 있었다. 꽃 문양 사이와 양옆으로는 막대 문양의 발광시설물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막대 문양의 발광시설물은 센서의 작동으로 점멸효과를 내 마치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연상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리게 설치된 듯 했다. 그 효과의 반대급부로 꽃 문양은 되레 하늘로 날아오르는 착시현상을 노리게 한 것 같았다. 혼수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눈에 보이는 것에는 가식도 있고, 눈을 홀리게 만드는 착시효과도 있다. 누구에게나 똑 같이 주어진 상황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상태나 조건에 따른 생각의 차이와 자세에 따라 피사체는 얼마든지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법이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보이는 현상, 껍데기만을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속성을 봐야 한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마음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서 분별할 것인가. 혼수는 그렇게 자문하면서 마음이라는 놈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문제는 명확해졌다.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는 내가 중심이며, 그 중심인 내가 변해야 한다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분 따라 기뻐했다가, 슬퍼했다가 마음내키는 대로 떠돌았던 시절들이 부끄럽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내 마음에 본래 있고 다른 데서 못 얻으니…….' PC방 사이트에서 보았던 글의 의미가 더욱 또렷하게 각인됐다. 배가 몹시 고팠다. 식당을 찾아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혼수는 가진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분수대로 주변과 어울리면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자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