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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청정 밝아지니 상대자가 부처

편집부   
입력 : 2012-11-21  | 수정 : 201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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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정취에 온 세상이 익어가고 있다. 밤사이에 내리는 비 소리가 토닥토닥 거리더니 새벽에는 어둑한 기운에 차가움 마저 들었다. 그렇게 기온만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드센 바람에 실려 마당 한가득 색 바랜 낙엽들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흩어져 구르는 낙엽을 깨끗이 한번 쓸며 그래도 또 떨어지는 낙엽들은 손으로 한 잎 한 잎 줍는다. 아직 매달려 있는 나뭇잎들은 저녁 황혼을 닮아서 그런지 때로는 붉거나 노란 단풍이 들기도 하고, 한켠 구석에 나지막이 숨어서 노랗게 웃듯 피어있는 국화꽃들은 가을의 전설 같은 향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렇게 오늘의 하루가 열리고 있다.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자증교설인 실행론 말씀에 이르기를 "이 마음이 청정하면 일체가 다 청정하고 이 마음이 망념(妄念)되면 일체가 다 허물된다. 내 마음이 넓고 크면 삼라만상 수용되고 내 마음이 옹졸하면 겨자씨도 수용 못해 이 마음이 모가 나면 무여 중생 유익 못해 허물로써 바라보면 상대자가 미워지고 자성청정 밝아지니 상대자가 부처로다"(실행론 3-3-6 제5절 수행공부)고 하였다. 

이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부처가 되기도 하고 허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을 청정하게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허물될 것이 따로 없다. 허물이란 이 마음에 망념이 일어나서 그 인연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청정이란 곧 법이다. 법(Dharma)은 현상의 모든 존재가 지닌 실다운 모습이며 최고의 진리이다.

밖으로 나타나는 허물이라는 것이 본래 실상이 아니므로 반드시 깨쳐보아야 한다. 그것을 다만 법으로 알아차리고 살펴서 실천하게 되면 나를 깨닫게 해주는 제일 크고 밝은 스승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반드시 마음수행의 경계가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이라 할지라도 눈먼 소경에게 전해주는 소식은 소용없는 헛된 말에 불과한 것이 된다. 색심불이(色心不二)라 하였으니 현실과 진리가 다르지 아니한데 그 경계를 말과 글로 어찌 다 나타낼 것인가?

삼국시대의 고승인 원효 스님이 의상 스님과 더불어 당나라로 구법유학을 두 번째로 떠나게 되었다. 길을 가던 중에 해가 저물어 당항성 근처의 한 무덤에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다시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였다. 그러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바로 삼계유심(三界唯心)의 이 마음이었다.

스승의 길을 가는 자에게 밖으로 구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항상 부끄러움을 알고 성현과 종조의 뜻을 백분의 일이라도 헤아려 묵묵히 증득해 가는 일이 최선의 길인 것이다. 그 길이 외롭거나 힘들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자성을 닦으며 밖에 있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은 안에 있으니 밖에서 구하지 말아야 한다."(실행론 2-4-5 제5절 불법은 심인법)

올해 12월에는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누구를 뽑겠느냐 하면 그 기준은 반드시 복덕과 지혜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것도 사실 상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언제나 나의 복 그릇 만큼만 되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보살이 되면 이 세상은 보살의 정토가 된다.

신문 지상으로 전해지는 많은 정보에는 자격의 시비가 난무하고,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현안이 되어 큰 시비거리나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겨울의 살바람 만큼이나 국내 또는 세계경제가 불황의 찬바람 중에 머물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대의 대변혁에 따른 화합과 평등, 개혁과 개방의 발언들이 삼인삼색으로 한꺼번에 수많은 정책과 대안들로 쏟아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자칫 모든 상황들이 현상에 치우친 포퓰리즘(populism)으로 정작 중요한 것을 뒤로한 채 눈 가리고 귀를 막는 경우가 되기 쉽다. 그런 것들이 오늘날의 현실을 직시하고 바람직한 성장과 미래 비전을 살피는데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의 일이든 진리의 일이든 체를 굳게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법은 체요, 세간법은 그림자이다."(실행론 5-3-5 제6절 불법과 세간법)

밖으로 드러난 현상의 일과 일체 상대의 허물을 보고 스스로 돌아보아 깨쳐야 한다. 그 길이 참회공부요, 복지증장하여 공존·공영하는 깨달음의 길이다. 보다 넓은 안목으로 용서할 수 없는 나를 책망하고 도량을 키워야 한다. 언제나 나의 본분은 심인을 밝히는 일이며 작은 일에 목숨거는 그런 어리석음을 결단코 버릴 것이다.

지정 정사·실행론심화연구모임 연구위원·불승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