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1

편집부   
입력 : 2012-10-04  | 수정 : 2012-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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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말법시대 불교는 다라니로써 흥왕한다


'말법시대 불교는 다라니로써 흥왕함'이란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이하 회당대종사)께서 진각종문을 여신 네 가지 이념 가운데 하나이다. 진각종의 창교이념은 '밀교중흥, 심인현현, 생활불교, 현세정화'이다. 즉 '말법시대 불교는 다라니로써 흥왕함'이란 창교이념 가운데 하나인 '밀교중흥'을 의미한다. 말법시대는 불교 정법이 무너지고 '탐심, 진심, 치심' 삼독으로 살생, 투도, 사음이 성행하는 물질만능의 시대이다. 이때에는 다라니불교(밀교법)의 심인 밝히는 법(지혜, 자비, 용맹)으로 불교를 다시 흥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다웁게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는 역사관에 근거하여 구분한 것이다. 정법시대는 부처님의 교법과 그 실천수행, 교법의 증득이 모두 갖추어진 시대〔信解行證〕이며, 상법시대는 교설과 수행만이 있는 시대〔信解行〕이고, 말법시대는 교설만이 남아 있는 시대〔信解〕이다. 보통 정법 오백년, 상법 일천년, 말법 일 만년을 말한다. 지금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지 천오백 년이 훨씬 지났으므로 말법시대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부처님께서 일찍이 방편으로 열반을 보이셨을 뿐 열반하신 것이 아니며 부처님의 법이 숨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볼 때 현재를 말법시대로 보는 것은 탐진치가 치성해져 가는 현상을 표면적으로 해석한 견해일 뿐이다.

그러므로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로의 구분은 현교에서의 구분이다. 밀교에서는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법체는 상주불변이어서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라는 시대적인 구분도 없을뿐더러 정법이니, 수행이니, 교설이니 하는 것을 떠나 있다. 현교에 정법시대, 상법시대, 말법시대라고 하여 흥폐를 논하고 있으나 진실로 정법은 영원하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법을 믿고 그 믿음을 더욱 굳게 하며 수행하기를 한결같이 해나갈 때, 그와 같은 수행은 정법, 상법, 말법의 집착된 견해를 뛰어넘어 언제나 정법 가운데에서 여실히 수행하는 각자(覺子)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수행이 곧 다라니를 방편으로 하여 수행하는 삼밀수행임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다라니는 총지(摠持)를 의미하는 것으로, 경전의 경구와 경구의 의미, 법의 이해와 실천, 삼마지의 획득, 부처님의 참된 말씀 등 일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다라니를 방편으로 하는 수행은 교법과 수행과 증득을 모두 갖춘 수행이다. 그리고 회당대종사께서 '진각교전' 제사절 '수행문답'에서도 말씀하신 것과 같이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이렇게 외우는 것은 이 진언을 외우는데 법신부처님의 설법을 듣게 된다고 하였다. 즉 진언다라니를 지송함으로써 법신부처님의 설법을 직접 듣게 되므로 그가 속한 시대와 장소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이건 간에 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설법을 직접 듣고 깨치고자 하는 자는 다라니를 지송하는 것이 가장 신속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현 시대가 말법시대라 할지라도 불심인을 깨치고자 할 때는 물론 타인을 교화하고자 할 때에도 역시 다라니로써 방편을 삼는 것이 가장 신속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현교는 정상말의 흥폐가 있으나 밀교는 상주불변이라 때가 없고 가림이 없기 때문이다.

교리적으로는 그러하나, 회당대종사께서 오늘날과 같은 말법시대에 다라니가 수행과 교화의 방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은 오늘날의 시대상황을 직시한 까닭이다. 회당대종사께서는 오늘날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삼업이 습성되고 삼독이 고질화되어 일체의 병폐가 일어나는 이러한 상황을 말법시대로 본 것이다. 즉 탐진치가 치성하여 성품은 어두워지고 도의심은 없어지고 살도음의 범죄자가 날로 성해져 가정이나 국가사회를 위태롭게 하는 일체의 병폐가 일어나는 현시대에는 다라니 지송이 이들을 정화하는 최대의 방편이 된다는 것이다. 즉 탐진치로 인해 두터워진 업장을 다라니 지송 즉 육자진언 본심진언인 옴마니반메훔으로 본심을 밝힘으로써 모든 병폐는 물러가고 물질시대에 안락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실행론심화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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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도원 정사


(콩트)길 위에서의 깨달음


모든 것이 아득했다. 길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가뭇없고, 가리사니가 잡히지 않아 요동치는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방망이질을 해댔다. 낯선 곳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공포에 온 몸이 가력되기라도 한 듯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진이가 집을 나설 때까지 모든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여름휴가가 끝날 즈음 1박 2일을 계획하고 서천을 향해 출발했다. 혼자 떠나는 길이라 준비할 것도, 달리 챙겨야할 물건도 그다지 없었다. 초행이라 내비게이션만 믿고 무작정 떠났다. 집 앞에서 바로 올라탈 수 있는 간선도로를 달리다가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한참까지도 도로는 아주 한산했다. 탄탄대로라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긴장이 풀리자 출발하기에 앞서 아내에게 혼자 조용한 여행을 하고 오겠다는 말을 쉬 내뱉지 못해 머뭇거리며 망설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조금 미안할 뿐이었지, 결코 숨길 일도 아니었는데, 하는 마음이 들며 피식 웃음이 났다.

진이가 살아온 길이야말로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까지는 탄탄대로의 삶이었다. 늘 상위권을 웃도는 학교성적 덕분에 형제자매들 중 어머니의 귀염을 독차지를 했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는 크게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진이에게 남부럽지 않을 정도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의 칭찬도 마주칠 때마다 쏟아졌지만 진이는 우쭐댄다거나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아 그야말로 착한 모범생이었다.

진이를 남부러울 것 없는 모범생으로 키우는 것은 어머니의 하나 뿐인 바람이자 집념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그 서원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는 진리생활이었다. 오십여 년 동안의 수행을 한치도 흐트러짐 없이 고집스럽게 이어온 진이의 어머니는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심인당 자성일불사에 빠지지 않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눈길에 버스가 다니지 않겠다 싶은 날이면 왕복 사십 리 시골길을 걸었다. 그도 여의치 않을 때는 불사시간에 맞춰 혼자 집에서라도 '진각교전'을 읽고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 염송을 하며 공식 불사시간에 참석한 것처럼 똑 같이 했다. 진이 어머니가 그토록 진리생활에 매달리는 까닭은 나름대로 터득한 증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가 진이였다.

"다음 500미터 앞에서 오른쪽 고속도로 출구로 나가십시오."

비록 기계음이기는 하지만, 내비게이션에서 흘러나온 매혹적인 여성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진이는 길가에 서 있는 도로표지판을 확인하지도 않고 운전대를 꺾어 우회전을 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이어지는 지방도로는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전국적으로 아는 길이 얼마 되겠냐 싶을 정도로 길에 관한 한 백치에 가까운 사실은 잘 아는 바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을 믿어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저당 잡힌 처지가 된 듯해 기분은 나빴다. 고속도로를 좀 더 달려서 빠져나가는 길도 있을 것인데 하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이 도로가 가고자 하는 길이 맞는가 하는 마음이 갈마들면서도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계속해서 직진하십시오'라는 말을 따라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달리 상황판단을 할 능력이 없었다. 지방도로인지라 포장은 그런 대로 잘돼 있어 다른 걱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알지 못하는 길을 내달리는 두려움이, 가뜩이나 길치인 진이를 곱송그리게 했다. 이따금 만나는 도로표지판에 적힌 지명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 서천이라는 지명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항상 생각나는 것은 어머니였다. 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6년 째 되던 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진이는 눈앞이 캄캄했다. 어머니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이곧대로 믿고 따르며 그대로 행동에 옮겼던 진이였기에 공황상태는 오래 갔다. 텅 빈 들판에 홀로 내동댕이쳐졌다는 느낌은 호사스런 생각일 정도로 극심한 멘붕상태에 처한 것이다. '엄친아'처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도 뒤따랐지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거대한 멘토였던 어머니의 존재를 청산하고 홀로서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계기는 어머니가 그토록 믿고 의지하며 매달리다시피 했던 것이 심인진리라는 인식을 한 뒤였다.

"GPS 정보를 다시 확인합니다. 목적지 정보가 바르게 입력됐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도로 끝'이라는 안내판이 앞을 가로막고 나타났다. 길의 끝이었다. 더 이상 길이 없었다. 절개지 앞에서 허탈감이 들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차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듯 싶었다. 진이는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며 새로운 이정표를 찾아볼 요량으로 차를 돌렸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한지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 내비게이션은 이제 우회전을 명령했다. 비포장도로가 보였다. 내비게이션을 믿지 않고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이번에도 무작정 우회전을 했다. 크게 요동치는 차는 속도를 낼 수도 없었다. 길 위의 돌이 튀어 올라 차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앞서가는 차는커녕 뒤따르는 차도 한 대 없었다. '나홀로' 외로운 전진을 하는 사이 고개도 세 개나 넘었다. 내비게이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먹통이 된 듯 싶었다. 핸드폰 안테나마저 하나도 뜨지 않았다. 설사 핸드폰이 살아 있다손 치더라도 위치정보를 알 수 없으니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난감한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까지 어둑어둑해져 왔다. 그야말로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대략난감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당장 어떻게 해서는 안 되겠기에, 나중에 반드시 박살을 내버리겠다고 우격다짐을 하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꿀꺽 삼켰다. 주변을 맴돌고 돌아서라도 결국 어느 순간에는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시켜 준 때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이번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만 참기로 하고 이를 악물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혼자 즐기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처럼 홀가분하게 나선 여행이었기에 서운해할 수도 있는 아내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후회와 참회의 마음이 스멀스멀 온 몸을 엄습했다. 이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일단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길을 찾아서 서천에 도착하는 일이 급선무이기에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머뭇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진이의 아내가 될 사람으로서 각이를 처음 본 어머니의 첫 번째 질문도, 혼인을 허락하는 조건도 '심인당에 나가는 것'이었다. 뱃속에서부터 심인진리를 믿었기에 항상 불공을 해주어야 아들 진이의 앞날이 탄탄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 때를 대비해서 불공을 해줄 수 있는 아내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자식들이 해줄 수도 있겠지만, 자식들이 심인진리를 믿고 불공을 할 정도로 자라기 전까지는 마땅히 아내가 해야한다는 논리였다. 어머니의 그 말에 아내는 선선히 따르겠다고 하면서 혼인은 성사됐다. 나에게 세뇌된 탓이었다. 그러나 시집을 온 뒤로 아내는 시어머니와 떨어져 있다보니 가끔 어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때를 놓치는 법 없이 전화로 아내를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진이에게도 별도로 타일렀다. 스스로 하는 불공이 최고라고……. 은근한 압력이었다. 아내를 믿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나름대로의 방책이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진이 역시 늘 바쁘다는 핑계로 심인당을 자주 찾지도 못했고, 집에서나마 염송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

어머니가 바라는, 스스로의 신행생활을 이제는 해야되겠다고 생각하는 그 때 비포장길이 끝나는가 싶더니 포장된 지방도로가 다시 나타나면서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서천이라는 지명도 또렷하게 보였다. 많이도 돌아온 듯 했다. 순간 눈이 확 열리면서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은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뜨였다. 참회도 됐다. 매일 아침마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뜬눈이 육체의 눈이었다면, 지금 뜬눈은 깨달음의 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훅 끼쳐왔다. 어머니가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