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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사와 삼밀행으로 해탈을 성취하자

편집부   
입력 : 2012-09-14  | 수정 : 201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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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무언가를 바랄 때 이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부가 집안살림을 꾸려나가거나 학생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원대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이 쉽게 성취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말했듯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해야할 일을 순간순간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와신상담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장작더미 위에서 불편하게 잠을 자고 쓰디쓴 쓸개를 핡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일을 잊지 않고 실천하기 위함입니다. '실행론'에서도 '참되고 선한 마음으로 목적성취를 위해 부지런히 걸어가자(4-6-3)'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목적이 있다면 그 길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가야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성불의 길을 육바라밀수행으로 행할 것을 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범부로서 육바라밀수행은 어려운 길(難行道)이기에 보다 쉬운 수행방편(易行道)인 다라니 지송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에서 설하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라는 주문(陀羅尼·眞言)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는 육바라밀의 의미를 육행 즉 희사·계행·하심·용맹·염송·지혜로 해석해서 대승보살의 육바라밀수행을 보다 실천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즉 육행을 육자진언 하나 하나의 글자에 배대하여 옴마니반메훔 지송으로 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목적성취를 위해 참되고 선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걸어가는 방편'을 옴마니반메훔의 지송을 통해 본심(本心)을 밝히면서 육행(六行)을 실천하는 것으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는 불공은 육행 중에서도 희사와 염송을 대표적 수행방편으로 삼고 있습니다. '실행론'에서 '탐심을 없애기 위해 희사(喜捨)하고 지혜를 밝히기 위해 정진해 나가면 이 가운데서 복이 솟아난다(4-6-3)'라고 설하고 있는데 이때의 정진은 염송 곧 삼밀행(三密行)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불공은 부처님께 공양하여 자신의 서원을 성취하고자 함이며 우리들이 하는 불공은 자력적 수행법입니다. 옴마니반메훔 지송수행은 육자진언 공덕력에 의한 타력적 면도 수용하고 있으나 희사와 염송(三密行)으로 행하는 자력적 수행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공양물로서의 보시가 아니라 강도부와 함께 삼종시로서 강도희사(講度喜捨)를 행하며, 의타적인 염불이 아니라 본심 밝혀서 자성불을 성취키 위해 염송삼밀(念誦三密·삼밀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즉 육자진언수행은 타력적 기복수행법이 아니라 스스로 복을 지어 가는 수행법입니다.

흔히들 일반사회에서는 자신의 노력으로 되지 않을 때는 자신보다 힘있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의 원 성취를 의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타력적 방편입니다. 심인당에 오랫동안 다녔음에도 자신의 원대로 되지 않으면 종단을 비방하고 심인당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심인당에서 수행하였던 불공 즉 희사와 삼밀행을 주로 타력적으로 해왔기 때문입니다. 희사를 하면서 사상(四相)을 비우지는 않고서 마치 부처님에게 뇌물을 주면서 자신의 원 성취를 의뢰한 것과 같습니다. 또 삼밀행을 하면서 본심에서 나오는 지혜를 스스로 밝히지는 않고서 단지 의타적 기복을 행한 것과 같습니다.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는 탐진치 마음이 더욱 치성한 물질문명시대에 생활 중에서 마음공부 하는 방편을 펼쳤습니다. 탐진치 때문에 자신이 바라는 원을 성취코자 하는 마음은 온대 간대 없고 순간순간 자신의 본래마음을 잊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물질시대의 수행방편인 희사와 삼밀행으로 사상을 비우고 지혜를 밝혀서 자신의 원을 하나하나 성취해 갑시다.

혜담 정사 / 실행론심화연구모임 연구위원·의밀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