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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579호)

편집부   
입력 : 2012-04-26  | 수정 : 201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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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중도를 선택했다

19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이번 총선에서 민심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절묘한 '균형과 견제'를 택한 것이다. 지금의 정권을 심판하면서도 새로운 체제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으며, 지난 공과에 대해서는 통 크게 몰아서 잘라버리고, 이제 여야 모두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개표 결과 의석의 과반을 차지한 여당이 승리를 거뒀다. 당초 100석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비하면 엄청난 선전이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곧 그간 집권세력이 자행한 실정과 비리의 용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승리라고 할 수도 없다. 야권에 대해서도 준엄한 경고를 내렸다. 집권세력의 많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야권에 대해서 수권세력으로서의 위상에 신뢰를 보내지 않았으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혁신과 반성을 요구했다. 어느 편의 승리도, 패배도 아니었다.

특별했던 점은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부터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제도권 외 정치세력이 이번 선거에서도 그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이다. 10대부터 2, 30대의 젊은층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는 한 인터넷방송 운영측이 이번에는 야권과 연대하여 여당과 힘을 겨루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운 후보자의 과거 언행이 밝혀짐으로써 자신은 물론 그를 받아들인 야권에 오히려 치명타가 되었다.

2, 3년 전부터 세를 불리던 이 세력은 여권의 각종 비리를 밝히는 동시에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으로 많은 지지층을 그러모았다. 정치권과 기존 언론이 하지 못했던 집권세력의 비리를 육두문자와 막말을 서슴없이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들추어냄으로써 지치고 희망 잃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했다. 지속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여 추종자들을 열광하게 했고, 그들의 말이라면 모두 진실이며 정의라 믿게 되었다. 정제되지 않은 그들의 언행은 평소 젊은이들이 정치권을 향해 내뱉고 싶었던 것이기에 오히려 친근감을 주었다. 그들은 단숨에 우상이 되었으며, 영웅처럼 행동했다. 같은 적(?)을 둔 야권이 이를 마다할 수도, 마다할 리도 없었다. 그들을 껴안았고, 그리고 그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였다.

문제는 그들과 추종자들이 뼈아프게 지적한 집권세력의 흠결이 자신에게 나타났을 땐 다른 논리를 적용하는 이중성이었다. 파시스트나 쓰는 '항상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란 논리를 그들이 적용했던 것이다. 진보를 내세우긴 하지만, 오히려 수구적이었다. 진보의 덕목은 개방성과 수용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상대는 물론 상대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생각조차 수용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지지를 막말로 폄하하고, 교조적으로 가르치려 들었다.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것이 많은 국민들의 반감을 일으킴으로써 결국 그들은 목적 달성에 실패했다.

이들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이러한 세력의 탄생 배경은 그간 기존 정치권과 제도권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음에서 비롯되었다. 모두 국민들의 실망만 안겨주었을 뿐 희망과 비전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자생적 조직이다. 또한 우리의 교육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학교에서 민주주의사회에 꼭 필요한 대화와 타협을 배우지 못했다. 중도의 자세를 견지하지 못했다. 당초 이들의 뜻이 허망하게 무너진 가장 큰 이유가 중도의 자세와 겸허함을 가지지 못한 탓이었다. 또다른 건강한 정치 대안이 될 수도 있었던 세력의 몰락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민들은 중도를 선택했다. 정치권보다 우리 국민들이 현명했다. 중도가 무엇인가. 중도(中道)는 공평무사의 길로서 두 극단을 떠나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길이다. 가운뎃길[中途]이 아니라 올바른 길[正道]이기에, 야합이 아니라 대립의 통일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의 통일이요, 위와 아래의 통합이다. 테제(these·正)와 안티테제(antithese·反)가 아닌 통일된 진테제(synthese·合)이다. 중도는 이분법적인 극단을 버리고 삶을 지혜롭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세상의 모든 불화가 극단으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안다. 중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지나치게 온건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중도는 화려하거나 현란한 수식이 필요 없는 진리의 길이다. 곁가지는 무수히 많을 수 있지만, 중심은 하나이다. 참으로 우리 정치권에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중도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