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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576호)

편집부   
입력 : 2012-03-22  | 수정 : 201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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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생명에 대한 예의는 지켜져야 한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예의는 지켜져야 한다

'평화의 섬' 제주도가 '갈등의 섬'이 되고 있다. 해군이 기지 건설을 위해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일대 발파작업을 강행하자 주민들과 환경단체, 종교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제주도는 정부에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제주도는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를 위한 행정절차에 들어감으로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다.

구럼비 바위는 한라산에서 흘러나온 용암과 바다에서 솟구친 진흙이 만나면서 형성된 길이 1.2킬로미터, 폭 150미터가 넘는 너럭바위이다. 이 특이한 바위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은 무의미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바위 가운데서 뜨거운 용천수가 솟아난다는 점 하나로도 보존가치는 충분하다.

또 '붉은발말똥게, 제주새뱅이, 기수갈고둥, 층층고랭이, 맹꽁이, 은어, 산호 숲' 등 멸종위기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작은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함부로 손대지 말아야 할 곳이다. 이런 곳을 폭파하는 행위는 자연에 대한 야만적인 테러리즘이자 또 하나의 4·3참극이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최소한의 예의가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65년 전의 4·3이나 이번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발파강행은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국가안보와 군사적 관점에서 해군기지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정부와 해군의 입장을 이해한다. 문제는 절차와 과정이 민주적이라야 한다는 전제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를 망각해 버렸다는 점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물리적 반동을 불러온다. 이미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16명이 철조망을 넘어 해군기지 공사현장으로 들어갔다가 강제 연행되자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등 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다. 아무리 국책사업이라 할지라도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한 상태라면 사업자체를 전면 백지화하거나 재검토하는 게 옳다.

더욱이 제주도 해군기지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한반도가 신냉전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부르스 커밍스 교수나 노엄 촘스키 교수를 비롯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잇따른 지적도 있고 보면 이참에 쉬어 가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와 중앙종회가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반평화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깨는 행위"라며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 검토를 요구한 것은 사태의 맥을 짚은 적확한 지적이다.

정치인은 정치논리로 접근하고, 장사꾼은 상업적으로 접근한다. 각자의 프레임으로 외물을 해석하는 행위는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해군기지 건설문제를 정부나 해군의 군사학적 접근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생태학적 프레임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환경론자들이나 생태전문가들을 향한 비난도 불온하다. 또한 종교인이 종교적으로, 불교인이 불교적으로 이번 사태에 접근하는 행위도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불교에서 가장 엄격하게 지켜야 할 계율이 불살생계이다. 생명에는 존비귀천이 없다. 생명은 그 자체로 절대이며, 목적이다. 불교계가 4대강 사업을 반생명적 폭거로 규정지은 일이나, 이번 구럼비 해안 해군기지 건설 발파작업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일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토는 법신부처님의 몸이다. 삼라만상, 산천초목이 모두 법신불의 당체다. 함부로 국토를 파헤치는 행위는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는 행위가 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의 배후에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공사의 배후에도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오만이 있었다. 1년 전 발생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이면에도 '자연에 대적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 어김없이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자연과 생명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그와 함께 자연에 대한 반생명적 테러는 결국 자해행위임을 명징하게 자각해야 한다. 

정부와 해군은 불교계를 비롯한 여러 집단과 주민들의 반대여론에 겸허히 귀 기울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일을 추진해 나가기 바란다. 그것이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