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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은 주름이고 대머리는 대머리다

편집부   
입력 : 2012-03-15  | 수정 :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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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눈이 먼다면?’ 반대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고 나 혼자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이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아마도 열에 아홉은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본다’는 것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또 거기에 새삼 의미를 두면서 살만큼 우리 일상은 한가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우연히 서가를 살피다 오래 전에 책을 잡은 순간부터 한순간도 덮을 수 없었던 책, ‘눈먼자들의 도시’를 펼쳤다. 이 소설은 이유 없이,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느 날 문득 눈이 멀어 버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두가 눈이 먼 도시,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용변을 보고, 사랑의 행위마저 서슴없이 행하는 등 더럽고, 추악하고, 폭력적이고, 무질서한 뒤틀린 욕망들을 행한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서 단순히 눈이 멀게 된 후의 인간의 모습을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할 수 있는 지를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눈이 먼 사람, 곧 존재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의미마저 상실한, 나아가 도덕적인 가치조차도 놓아버린 그런 사람에게 이름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 ‘검은 안경을 썼던 여자’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던진 첫마디는 “주름은 주름이고 대머리는 대머리다”였다. 옳은 일과 그른 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이처럼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분명한 것을 구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부처님은 무어라 말씀하실까?

“탐(貪), 진(瞋), 치(痴)의 삼독(三毒)을 멀리해라.”

 

신상구 / 위덕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