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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574호)

편집부   
입력 : 2012-02-16  | 수정 :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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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의 입전수수(入廛垂手)를 주목한다

조계종이 '삼라만상은 상호의존하고 침투, 융합하는 밀접한 인연관계를 이룬다'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의 화엄정신을 전 방위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먼저, 지난 2월 2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2009년 1월 20일 발생한 용산참사와 관련한 구속자 8명의 특별사면을 정부에 청원했다. 청원서에서 스님은 "용산참사 관련자가 아직 구속되어 있는 등 비극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 종교인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화해와 관용의 정신으로 특별사면의 결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지난 9일 용산참사 대책위 사무실을 방문해 유가족 및 관계자들을 위로하고 금일봉을 전달했다.

자승 스님은 또 이날 신년 사업계획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국민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정치권으로부터 홀대받는 이유는 그동안 사회의 어둡고 힘든 쪽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자성(自省)을 바탕으로 33대 집행부가 가고 있는 길 중의 하나가 용산문제"라고 밝혔다. 용산참사 관련자에 대한 특별사면 청원이 요식행위가 아닌 동체대비심의 발로이자 입전수수(入廛垂手)의 현대적 실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자승 스님의 진정성은 2009년 11월 총무원장 취임 후 첫 공식행사로 용산참사 현장을 찾은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후에도 구속자들에게 영치금과 위로편지를 보내는 등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고 지난 8일에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장에게 빠른 사면을 당부하기도 했다. 또한 이웃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사면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제안했다. 한 두 차례의 형식적인 위로방문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수미일관한 스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종교지도자상을 본다. 자승 스님의 뒤를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의 철거민 수감자 특사 건의가 있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사면촉구 성명도 나왔다. 종교지도자 한 사람의 의지가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고 추동(推動)할 수 있다는 실증이다.

이 뿐 아니라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지난 7일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크레인 농성을 벌여 업무방해죄로 재판 받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장을 비롯해 '희망버스'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화쟁위 위원장인 도법 스님이 이미 사태당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원만한 해결을 발원하는 108배를 올리는 등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하였으나 종단차원의 입장표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한진중공업 사태 구속자 석방을 위한 성명발표는 종교계 최초라고 하니 "국민의 행복과 평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던 다짐이 공허한 레토릭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하겠다.

'중생 프랜들리' 행보 계속돼야

이에 사법부가 화답했다.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울보시인' 송경동씨와 진보신당 비정규직 실장 정진우씨가 지난 9일 보석으로 출소했다. 사익(私益)이 아닌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를 위해 거대자본과 맞섰던 그들이기에 당연한 결과다. 미구에 김진숙씨에게도 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그동안 비리 정치인, 관료, 경제인 등 3,449명을 특별사면·감형·복권 조치한 바 있다. 심지어 2009년 12월에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한 사람만을 위한 '매우 특별한' 특별사면조치도 있었다. 이번엔 사회적 약자인 한진중공업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 중단과 용산참사 관련 수감자들에 대한 3·1절 특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조계종은 또 그동안 내부갈등을 빚어오던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일명 아쇼카 선언)을 다음달 28일 제13대 종정 추대법회에서 공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8월 화쟁위원회가 '불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이 선언의 초안을 공개한 이후 "열린 진리관"이라는 주장과 "반불교적"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수개월 째 공표가 유보돼 왔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조계종의 결단을 존중한다.

종교 갈등이 도를 넘어 사회적 통합의 걸림돌이 된 현실을 감안하면 종교평화를 위한 진정(眞情)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고 있다"는 인식에도 크게 공감한다. 다만 이 선언이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조계종 선언'이 아니라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인 이상 범교계적 차원의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불교계의 대표종단이라는 오만이 빚은 결과라면 심히 유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조계종의 행보는 고답적 정신주의에 매몰된 채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을 망각했던 저간의 모습을 과감히 탈피하고 동사섭(同事攝)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정치가 놓치는 부분을 챙기는 일이 종교의 역할이다. 특히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사회공동체의식 제고에 앞장서는 것이 종교의 본령이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프다"고 했다. 중생이 아파하는데도 함께 아파하지 않는다면 보살이 아니다.

연초부터 이어지는 조계종의 전향적 변화는 예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달 15, 16일 양일 간 "진각종과 천태종을 방문하여 두 종단의 발전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우겠다"며 한껏 몸을 낮췄다. 조계종의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알게 해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총인원 방문이 조계종은 물론 진각종에도 더 큰 배움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을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조계종의 의지와 노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중생 프랜들리' 행보가 우리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모멘텀이 되기를 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