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웃고싶다, 그러나

편집부   
입력 : 2011-12-16  | 수정 : 2011-12-16
+ -

세상이 누룩처럼 부풀어 마르지 않을 욕망으로 치달리다가 문득 잘못되어도 되돌아갈 힘을 잃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다. 겉보기 좋은 글과 말들이 화려한 날개를 달고 우리가 서 있는 땅을 망각하고 하늘만 쳐다보는 본질을 호도하거나 가리는 수사들이 난무하기도 한다.

힘든 이웃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어느 날 갑자기 줄어들거나 스스로의 힘 또한 소진되고 있음에 놀란다.
거리를 밝히는 상점 안을 들여다보아도 지하철의 청년들과 중, 장년 그리고 노년들을 곰곰이 들여다보아도 멀지도 않은 어제의 느낌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화려함은 방송국 연속극과 노래자랑 무대에만 보이고 있고, 어찌하여 내 주변과 이웃들의 실상은 더 힘들어지고 있는가.

우리의 짧고도 빠른 근대화 진행 중에 차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집도 있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던 중에 갑자기 그것들 때문에 힘들어지고 있다는 생각, 다름 아닌 급속한 욕망의 지속가능의 한계에 도달한 것을 알아차린다. 가위 전지구적 동시다발 현상임에 놀란다.

한 때는 스스로 33% 즈음의 중간계급의 안락함에 있다는 착시 속에 있다가 갑자기 벼랑 같은 99%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왜 이런가. 옛사람 보다 더 먼 거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더 많은 음식을 소비하며, 해가 진 후 한 밤까지도 일하는 데, 왜 더 불행한가. 불사에 큰 공덕을 쌓아도, 예배당에 큰 봉헌을 하여도 어찌하여 더 행복해지지 않는가.

세상이 사바요 아수라의 땅이어서인가 검정말이 날뛰는 시대의 시작이어서인가. 온갖 좋은 표현을 동원하여 희망적이거나 낙관적인 모습들이 떠올려 보아도 자꾸만 바래지고 있는 것은 진정 기우인가.

산 아래가 괴로운 데, 어찌 산 속이 괴롭지 않겠는가. 이 지경까지 끌고 온 근대사의 주역들이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고통 속에 있는 젊은이에게 최소한의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나이가 들면 관대해진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이가 들수록 비타협적이며, 완고해지며, 자신의 성공담에 집착하여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헛발질, 영양가 전혀 없는 수사나 늘어놓는 무책임한 말씀세대다. 대안을 제시해서 건강한 공론과정을 통하여 젊은이에게 마중물이라도 퍼 주거나 답을 제시하여야 한다.

웃고 즐거웠던 꿈에서 깨어나니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하다.

강태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