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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세상을 뜨는구나

편집부   
입력 : 2011-11-30  | 수정 : 201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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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켰는데 마침 음악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면, 꽃미남 아이돌 스타나 하의실종 패션 걸 그룹의 새된 목소리와 현란한 율동이 화면을 채울 공산이 큽니다. 섹시 코드를 장착한 걸 그룹의 극성은 대략 난감하기만 합니다. 대중문화의 대표적 장르인 가요도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일 테니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군요.

가요의 흐름이 화려한 기교와 현란한 비주얼로 치닫다보니 질료의 본바탕과 진정성에 도달하려는 움직임이 무대 안팎에 일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나가수(나는 가수다)' 같은 경연 프로그램도 긍정적인 측면을 살피면 음악적 표현의 다양한 갈래를 소개하고 노래의 본령에 다가서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물론 시청률을 고려한 방송사 측의 전략적 기획의도가 작용했겠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 해 추석 무렵 전파를 탄 '세시봉 친구들'은 걸 그룹·아이돌이 장악한 가요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등 '세시봉 친구들'이 들려준 음악적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와 순수에 대한 열정이 잊혀져 가는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을 뿐더러 노래 자체의 서정적 아름다움이 감탄을 자아낸 때문일 것입니다.

세대를 망라해 신드롬으로까지 일컬어진 세시봉 복고 열풍이 얼마나 지속될지를 가늠해봅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예상 밖 호응과 지지 열기가 오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시대의 트렌드는 스피드와 크로스 오버, 통섭입니다. 다이내믹한 율동과 하이브리드 이종교배, 3D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득세하는 세상이기도 하죠. 오래된 서랍장을 열어보고 그 속에 담긴 소중한 물건들을 펼쳐보며 얼마간 추억에 잠길 수는 있겠지만 그렇잖아도 빛 바랜 내용물들은 햇볕에 노출되면 머지않아 시들기 마련이어서요.

얼마 전 '자유칼럼'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한국일보 임철순 주필이 펴낸 칼럼집 '노래도 늙는구나'는 472쪽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두께의 책이지만 읽기에 큰 부담이 없습니다. "노래도 늙는다"는 카피는 책 이름이자 칼럼 제목인데, '산울림'의 김창완이 한 말을 빌려온 것입니다. 좋은 노래가 경박한 유행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데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읊은 설워하는 것이에요. 실은 세월이 흐르며 어쩔 수 없이 무뎌지는 감성을 안타까워하며 자신과 주변을 위로하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며 대중이 선호하는 음악도 자연스레 바뀌기 마련이죠. 그것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립싱크와 더블링, 노골적 가사, 정체가 불분명한 랩 등 대중음악의 병폐적 현상이 혼란스럽고 못내 아쉽습니다. "노래도 늙는다"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 옛날 서슬 퍼렇고 엄혹했던 독재시절을 견뎌내도록 위로해 준 황지우 시인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떠오르는군요. "노래도 세상을 뜨는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을 금할 길 없습니다.

"갈대숲을 이륙한 흰 새떼들이/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일열 이열 삼열 횡대로/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김창식(수필가·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