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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태어나는 날

편집부   
입력 : 2011-11-15  | 수정 : 20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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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불명만큼은 좋은 이름으로 받고 싶어서 나름 11월 수계불공을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받고 보니 거룩하고 불교적인 불명이 아닌 여자이름 같은 불명이 나왔다. 내가 원했던 불명은 ‘관세음’이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뒤에다 보살만 붙이면 관세음보살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남들이 관세음보살님하고 불러주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우습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너무 어리고 불교를 잘 몰라 불보살님들의 명호를 불명으로 짓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내 기도가 너무 부족했다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받은 ‘승수지’란 불명을 가지고 그 뜻을 열심히 풀이해봤다. 그 결과 지혜를 닦는데 뛰어나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불명에 맞게 살아가는 것일까 하고 고민하다가, 교화를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게 사는 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불명으로 인하여 교화자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항상 보살님들에게 불명의 뜻을 잘 새기고, 불명은 평생의 화두이며 나의 장단점을 모두 다 갖추고 있는 함축된 인과라고 말을 한다.

사실 계를 받으며 불명이 무엇인가에만 관심을 가지지 정작 중요한 십선계를 받으면서도 무슨 계를 받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정작 계를 받을 때는 긴장도 하고 정신이 없어서 무엇을 했는지조차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스승이 되어서 수계불사에 참석해보니 그 분위기가 나를 새롭게 하고 어느 보살님이 ‘새로 태어나는 것’ 같다고 한 말이 참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도 네가 나를 꽃이라 불러주었기에 내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았듯이, 불명은 나를 부처님의 권속으로 불세계의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불명을 받기 전과 후의 나는 같은 존재가 아닌 것이다.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명은 곧 계를 받음을 말하는 것인데, 앉아서 받고 서서 파해도 공덕이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불제자가 되겠다는 발심의 힘이 설령 죄를 짓고 과보를 받아도 그 과보가 다하면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게 하기 때문에, 깨침 없이 수없이 윤회를 돌고 도는 중생보다는 더 빨리 불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계를 받기만 하여도 그 공덕이 무궁하지만 그 계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불명을 화두로 삼아 정진한다면 계를 받는 날은 실로 보살로 새롭게 태어나는 날이 될 것이다.

시복심인당 승수지 전수 =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