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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편집부   
입력 : 2011-10-13  | 수정 : 20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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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 법정이 쓴 수필 '무소유'에는 성인으로서의 풍모와 인간적 향기가 함께 배어 있다. 스님은 장마가 끝나 무더운 어느 여름 날 외출을 했다가 뜰에 내놓고 나온 난(蘭)이 더위에 시들지 않을까 걱정 돼 안절부절 한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스님은 난을 겨우 소생시킨다. 며칠 후 지인에게 난을 건네주고 나서야 집착과 번뇌에서 풀려나 평안을 얻는다는 내용이 기둥 줄거리다. 수필을 읽으며 스님이 주창한 무소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법정 스님 같은 대덕고승이 일생동안 추구하고 몸소 실천한 무소유는 비움을 통한 '텅 빈 충만', 곧 공(空)의 세계와의 우주적 합일(合一)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스님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에게까지 그러한 무위자연의 도가적·선불교적 경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리라 여겨진다. 말이야 쉽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음'과 '되도록 덜어냄'이 어찌 하루 하루를 그렁그렁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에게 곧바로 해당되는 일 일까보냐.

비우고 버리는 삶이 청정하긴 하지만 소유로부터 온전히 떠나는 삶은 저잣거리 사람으로선 상정하기 힘들다. 다만 '욕망에 의한 소유'와 '필요에 의한 소유'를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한 분수에 맞는 소유와는 별도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그래서 함부로 놓아 보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순수, 의리, 우정, 사랑의 맹세, 관계의 길들임, 은혜에 대한 감사,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려…. 이러한 가치들은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현실적 삶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어 우리 삶의 외곽에 위치한 채 쉽게 버려지고 주목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 같은 가치와 덕목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하여 어쩌다 화제에라도 오를라치면 마치 말하여져서는 안 될 것이 말하여 진 것처럼 얼굴을 붉히거나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든 공소(空疎)해 보이지만 형이상학적이고 보편적 가치에 대한 향수가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잠복해 있음을 믿는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방향성을 제시하고 역사의 전개에 물줄기를 튼 것은 다름 아닌 그와 같은 가치를 창달하려는 개개인의 깨우침과 보이지 않는 노력의 결과일 테니까.

스님이 건네준 난으로 돌아간다. 법정 스님이 난을 전해준 지인은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심성이 고운 분으로 느껴진다. 그분은 거실 한 켠에 난을 기르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새로운 꽃을 피웠을 것이리라. 스님의 마음이 실린 난의 은은한 향기는 헐벗은 자의 거리와 빈자(貧者)의 동네를 휘돌아 동구 밖으로, 온 세상으로 널리 퍼져 나가리라. 스님은 난을 원래부터 그것이 있었던 세상, 우리에게로 돌려보낸 것이다.

김창식 수필가 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