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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신민경 기자   
입력 : 2001-05-04  | 수정 : 200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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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담은 천년 사찰의 향기 겸재 정선(1676-1759)은 실경을 본떠 그리는 진경산수의 독자적 세계를 연 주인공으로 한국 산수화의 정착과 전개에 이바지했다. 특히 금강산을 직접 답사하며 그 경관을 그린 '금강전도'(국보 제217호)는 눈을 현란하게 한다. 단원 김홍도 역시 산수화와 풍속화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했던 인물로 먹의 농담으로 원근을 자유롭게 묘사함으로써 한국의 정취와 감각을 담아냈다. 이 두 사람의 후예라는 극찬을 듣고 있는 한국화가 이호신(44)씨가 1995년부터 불국사, 화엄사, 낙산사, 부석사, 구룡사, 내소사, 미황사, 백련사, 백양사, 불영사 등 전국의 40여 군데 사찰을 돌며 담은 수백 편의 그림을 한 권의 책에 모았다. 그는 십수 년을 배낭 속에 붓과 묵즙을 넣고 열차와 버스로 인연 닿는 절에 머무르며 숱한 현장 답사를 통하여 살피고 느끼고 들은 것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마음에 담아 그림을 그리고 답사일기를 써왔다고 한다. 동양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적 화법의 접목을 실험하고 있는 화가 이호신의 화첩이자 기행문인 셈이다. 우리 산수와 천년 고찰들의 풍경이 현대적 수묵화와 기행문으로 피어난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해들누리)는 결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한국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나고 있다. 한번 훑어보는 데도 꼼꼼히 공을 들여야 할만큼 천년을 내려온 고찰들의 역사와 현재 모습이 그대로 읽히는 이 책은 경배의 도량이자 마음의 안식처인 천년 사찰들이 수묵화로 피어나 마음을 씻어준다. 금강산 한 봉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는 달마산. 그 달마산 뒤에서 해가 뜨고 저무는 남해를 바라보는 곳에 둥지를 튼 미황사를 찾은 필자의 소회를 한 대목 들어보자. "…이제 어스름이 밀려오자 달마산의 삼황(三黃)이라는 불상, 바위, 석양이 한 세기의 장막을 거두듯 노을 빛으로 온 누리에 깔린다. 그 황금빛은 바다와 섬에서 뭍으로 올라와 미황사 뜰과 가람을 물들이고, 달마산 바위로 번지는데 새해를 위해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를 한 나그네와 미황사 부처님이 함께 바라보고 있다."(1999년 12월 미황사에서) 필자는 "산사에 매료된 것은 예술과 자연이 절묘하게 어울린 신묘한 자태 때문이다. 산봉우리와 계곡이 조화를 이루는 길지에 터를 잡은 산사들은 조각과 회화, 공예, 건축 등 예술의 모든 장르를 화려하게 꽃피웠다. 법당의 추녀 곡선과 단아한 단청,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는 욕심나는 탐구대상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최근 무모한 불사로 가람의 신성함과 원형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도하고 안타까워하며 지켜져야 할 '가람의 향기'를 화폭에 담아 이웃에게 회향하고 싶었다고. 아름다운 자연과 하나되어 수천 년 이 땅을 지켜오고 있는 사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예술의 향기가 몇 배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민족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예술로 전하려는 작가의 열정 때문이었으리라. 신민경 기자 smink@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