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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 565호)

편집부   
입력 : 2011-09-01  | 수정 :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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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한계 보인 '호국불교' 비판 세미나

지난 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한국불교의 전통인 '호국불교'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는 밀교신문을 비롯한 교계 언론사의 보도가 있었다.

관련기사에 따르면 "불교계는 더 이상 호국불교라는 망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시대에 맞지 않는 호국불교를 지양해야 한다." "친일불교의 청산이나 학술적 재고 없이 식민지기에 부상한 호국불교 개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잔존한다"는 등의 지적이 잇따랐다고 한다.

일단은 패널들의 냉엄한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미상불 한국불교가 저간에 보여준 양태는 호국불교의 외피를 쓴 기득권 세력의 '체제수호불교' '어용종교'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일정부분 인정한다. 또한 지난날에 대한 자성과 참회가 부족했던 점, 여전히 정치권과의 유착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강자의 논리에 매몰된 채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국불교'가 정치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날 패널들이 범한 몇 가지 큰 오류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먼저 한 토론자의 "호국의 '국(國)'은 일본의 국체(國體)인 '천황'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일부 친일불교 세력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전체 불교계로 확대 적용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오히려 당시의 불교가 항일투쟁의 전위에 선 구국의 종교였다는 것은 이미 진부한 상식이다. 무엇보다 호국불교라는 개념은 일제시대 훨씬 이전부터 있어왔다.

둘째, 패널들은 '호국불교'를 표방한 불교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역사적 사실을 심대히 폄훼했다. 호국불교가 "피아의 구분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한 패널의 지적은 지나치게 기계적인 이해방식이다. 그렇다면 '친일불교'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참다운 불교정신의 발로라는 말인가. 호국불교를 '호법불교' '참여불교'로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이치에 닿지 않는 모순어법이다. 이 용어들도 상대와 나를 전제로 한 상대적 개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호국'이든 '호법'이든 상대로부터 보호하고 지켜낸다는 점에서 결국 피아를 구분하기는 매일반 아닌가.

'참여' 또한 어떤 일에 관여함을 말할진대 피아를 구별하지 않으면서 관여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아를 구분 짓기는 '호(護)'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없다면 지키고 보호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단장취의(斷章取義)의 함정에 빠진 '강조의 오류'라 할만하다. 아울러 "마군(魔軍)을 항복받고 외도를 제어"코자 하는 용맹심이 곧 호국불교 정신의 근간이며,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는 호국불교의 정신이 곧 '참여불교' '호법불교'의 동력원이라는 점도 이쯤에서 도저하게 확인해 둔다. 다만 호국불교 정신의 오작동(誤作動)이 문제일 뿐 호국불교 정신 자체는 하등 문제되지 않는다.

셋째, 일부 패널들은 호국의 '국(國)'을 국토의 개념과 동일시하는 인식의 오류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나라'나 '국'이라는 말을 영토적 개념만으로 이해하는 것은 인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불국토, 밀엄정토(密嚴淨土)라는 말은 영토적 개념이 아니다. 호국이라는 용어를 불국토, 밀엄정토, 즉 마음의 정토를 수호한다는 뜻으로 의미의 지평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직심(直心)이 곧 정토요. 보리심이 곧 정토요. 사무량심이 곧 정토"라 하였다. 곧고 바른 마음, 깨달음에 대한 열망, 자비로운 마음을 잘 지켜 나가는 것이 바로 호국이라는 얘기다. 이미 진각종은 이러한 의미로 진호국가불사(鎭護國家佛事)를 표방하고 있다.

학술세미나는 하나마나 한 동어반복을 벗어나 새롭고 참신한 시각으로 사물을 재해석하는 데 목적이 있기는 하나 논리적 완성도가 부족하면 견강부회와 궤변으로 흐르고 만다. 다만 몇 가지 오류와는 별개로 정교유착관계의 청산으로 '호국불교'의 왜곡된 이미지를 개선하고 '호국'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는 있다고 본다. 미구에 자주적 불교, 진호국가불사를 표방하는 진각종에서 이 문제를 보다 심도 있게 다루는 장을 마련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