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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종의 발전 원리

편집부   
입력 : 2011-08-04  | 수정 : 201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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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진리는 무상진리이니 깨닫는 진리이고, 깨쳐서 고치고 행하는 종교이다."(종조법어록 94)

종조님께서 진각종의 종문을 개종하시던 시기는 수난과 고통의 시대였다. 너무나 괴롭고 힘든 삶이었기에 어떤 사람들은 죽어서 천당에 태어나기를 기도하고, 어떤 사람들은 죽어서 극락에 태어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종조님께서는 이때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모두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통찰하시고 깨우침의 가르침을 열어주셨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팔자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오직 기도하고 원을 세워 바랄 뿐이었지만 종조님께서는 "지금의 시대는 무엇이든지 고쳐서 살 수 있는 시대이므로 팔자도 능히 고칠 수가 있다"(종조법어록 18)고 가르침을 주셨다. 이런 고침은 깨우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 깨우침은 내가 성장하는데 장애가 되는 허물을 벗게 한다. 뱀은 육신의 허물을 벗지만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깨우침을 통해서 정신의 허물을 벗는 것이다.

종조님에게 있어서 윤회는 죽어서 새로 태어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난, 병, 불화 등으로 반복되는 괴로움이야말로 이 시대의 윤회였고 이런 반복된 괴로움을 끊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살지 않겠다'는 의식전환과 '이와 같이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겠는가' 라는 질문의 답을 얻는 것이었으며 이런 과정이 바로 깨우침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깨우침은 종조님께서 "종교생활은 행복을 얻으려는 생활이 아니고 내가 닦아서 행복하게 되는 생활이다. 밝은데서 밝은 데로 나아가는 길이다"(종조법어록 537)라고 하셨듯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직결되어 있다. 

이 가르침은 심인당에도 적용되었다. 종조님께서는 "마지로써 부처님께 공양하던 시대에는 술과 밥으로 제사를 받들고 손님 대접하는 것이 주가 되었다. 그 시대에는 그 이상 더 좋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는 국가를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중생을 위하여 물질을 희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명예와 행복이 없으므로, 불교에서는 물질을 희사하여 교화에 주력하게 하는데 큰 불공이고 큰 공덕이 된다"(종조법어록 69) 라고 하시며 부처님께 공양하는 예법부터 바꾸신 것이다. 얼마 전 이웃 사찰의 스님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천도재 이야기가 나왔는데, 요즘 사람이 열반하여 사찰에서 49제를 지내면 적어도 3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이 때 사찰에서는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서 상차림을 한다. 49제 동안 7번의 상을 차리는데 드는 비용은 1주에 약 30만원이다. 300만원 가운데 210만원은 음식물로서 먹어 없애는 비용이다. 결국 불교의 발전과 유지를 위해서 쓰여지는 비용은 90만원에 불과하다. 신도는 영식을 천도했다는 안도감이 들기는 하겠지만 과연 이것이 복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심인당에서는 사십구일 추선불사를 한다. 음식공양은 없다. 대신에 희사를 한다. 심인당에서는 고스란히 300만원이라는 기금이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공덕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신교도 스스로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음식을 공양하는 것 보다 더 큰 공덕이 있다는 사실을 깨쳐야 한다. 종조님께서는 "물질문명시대는 재물을 잘 쓰는 방법을 일으켜서 곧 사회사업을 해야 한다"(종조법어록 724)고 하셨다. 음식공양은 먹어서 없애는 소비성이지만 희사금은 심인전당을 짓고, 종무원과 스승을 양성하고, 사부대중을 재교육하는데 사용되며, 학교법인을 유지하고 복지법인을 지원하는데 쓰인다. 내가 하는 희사금은 먹어서 없애는 음식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각종단의 전당건설, 문화, 복지, 포교의 자양분이 되어 공덕으로 승화된다. 종조님께서는 "희사는 국가사업과 종교사업과 사회사업 및 일체중생들이 함께 불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보람 있고 영원한 재물이다"(종조법어록 721)고 하셨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큰 공덕을 일으키는 것이다. 둘째는 종단 자체에서 희사금이 공덕으로 승화되도록 옳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종조님께서는 "이미 희사한 희사금은 좋은 자리에 써주어야 희사공덕이 커지게 된다"(종조법어록 322)고 하셨다. 이것은 승가 스스로가 물질을 옳게 쓰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조님께서는 "옳게 쓰는 법을 세우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종조법어록 기타편 22)고 하셨다. 종단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이러한 정신이 퇴보되지 않도록 끊임없는 수행과 정진, 그리고 자정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종조님께서는 진각종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물질을 옳게 쓰는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종조님께서 "물질시대는 한 사람이 물질을 옳게 쓰면 별로 표시가 나지 않으나 국민의 반이나 전체가 실행한다면 그 표시가 현저(顯著)할 것이다. 내가 잘 쓰고 옳게 쓰면 상대방이 잘 벌게 되고, 상대방이 잘 쓰고 옳게 쓰면 내가 잘 벌게 되므로 국민 전체가 잘 되는 것이다"(종조법어록 723)라고 하셨듯이 종조님께서는 국민 전체가 다 잘되어 가난, 병, 불화 등의 괴로움을 해탈하고 모든 국민이 팔자를 고치기를 서원 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우리가 하는 희사는 단순하게 부처님에게 공양한다거나 보시하는 차원이 아니다. 종조님께서 "희사는 일체를 꿰뚫는 방편 중에서도 미묘한 방편이다. 희사는 공덕이 성취될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하며 한 번에 많이 하는 것보다 여러 번 나누어서 하는 것이 좋다. 희사는 마음을 밝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미워하지 말고 그를 위하여 희사하고 마음을 밝혀야 한다. 희사는 부모나 남을 제도하는 방편이 된다. 스승을 위해서 희사하고 법을 들으면 지혜가 커진다. 희사는 죄를 소멸하는 법이기도 하다"(종조법어록 674)라고 하셨듯이 희사는 곧 수행이 되는 것이다.

종조님께서는 "상근기(上根機)의 사람은 극락(極樂)이 가까운 데 있는 줄 알고 하근기(下根機)의 사람은 극락(極樂)이 먼 데 있는 줄 안다"(종조법어록201)고 하셨다. 극락은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견으로 인과를 깨달아서 좋은 인을 짓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나의 마음가짐에 있다. 정진으로 깨쳐서 허물을 고치지 않고 극락 가기를 바라는 것은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지으려는 행위와 다름없는 것이다. 

혜언 정사 / 종조법어연구모임 연구위원·보광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