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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 찾는 불공으로 마를 항복 받자

편집부   
입력 : 2011-07-19  | 수정 : 201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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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마음의 과학'이라고 한다. 이는 마음을 대상으로 삼은 과학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종조님께서도 불교수행을 '마음공부'라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종종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데에는 소홀한 것 같다.

마음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최소한 자신의 현재 마음이 '본심'인지 '중생심'인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데도 말이다. 우리들이 하는 어떤 일에 있어서 마(魔)가 생기는 것을 마장이라 한다. 마는 '마라(魔羅·mara)'의 준말로 수행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해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장애가 되는 '마가 항복'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각교전'에서는 오히려 '마를 항복 받는 것이 해탈이라'고 설한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

불교에서 마는 '마음의 번뇌'라 할 수 있다. 번뇌로 인하여 해탈 가능한 일들이 장애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점령한 이탈리아의 시칠리(Sicily)시를 미군이 탈환하고자 할 때의 일이다.

미국의 패튼(George Smith Patton·1885∼1945) 장군은 전장 순찰 중 장교와 사병이 담벼락에 탱크를 세워두고 담배를 피우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했다. 패튼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시칠리시를 공격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패튼은 "그러면 당장 탱크를 몰고 진격하라"고 명령했고, 그 결과 저항하는 독일군을 물리쳐 시칠리시를 탈환했다.

우리들의 마음은 늘 중생심이 잠재되어 있어서 본심이 활동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자명종이 울어대면 '일어날까? 잠을 더 잘까?'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또 건강을 위해서 산행계획을 세웠지만 막상 실천할 때가 되면 '꼭 가야하나? 내일가면 안될까?'하고 망설이게 된다. 이 같은 마음의 번뇌는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있어서 모두 장애로 작용한다. 시칠리 시가전에서도 도시를 탈환하고자 신중을 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공격을 지금 할까? 말까?'하며 망설였던 것이다.

'진각교전'에서는 '악으로서 행하는데 악으로써 갚음'을 마라고 설한다. 우리들은 병에 걸려 큰 고통을 받게 될 때 '이런 고통을 받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곧 마에 항복을 당하는 순간이다. 또 남으로부터 충고를 듣거나 꾸지람을 듣게 될 경우에도 상대방의 단점을 꼬집거나 화를 내면서 그 대화에서 벗어나려 한다. 곧 자신의 작은 허물을 고치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허물을 더 크게 들추어내 비방함으로써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주변 여건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마에 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링컨(Abraham Lincoln·1809∼1865) 대통령도 10세에 모친을 잃고 21세까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두 번의 사업실패로 17년 간 빚을 갚아야 했고 의원선거에서도 네 번이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번뇌스러웠을 자신의 마음을 항복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들을 고통 속으로 빠트리고 있는 것은 시련 그 자체보다도 오히려 따라오는 번뇌다.

취직시험에 떨어진 것보다도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 사업에 실패하여 회사가 도산하게 되면 '빚을 갚지 않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의 번뇌들이 결국은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장애가 되고 만다.

부처님께서는 인생이란 고(苦)의 세계이나 그 고(苦)는 반드시 해탈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해탈을 가로막는 장애란 다름 아닌 우리들 마음이 본심이 아닌 중생심으로 활동함으로서 일어나는 번뇌이다. 오늘도 회당 대종사님의 마음공부를 실천하는 진언행자 모두는 항상  본심 찾는 불공으로 모든 마를 항복 받아 구경 해탈되기를 서원한다.

혜담 정사 / 종조법어연구모임 연구위원·의밀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