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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562호)

편집부   
입력 : 2011-07-19  | 수정 : 201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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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환경을 생각한 동계올림픽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강원도 평창이 결정되었다. 한국 시간으로 이 달 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함으로써 마침내 꿈에 그리던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것이다. 이에 우리 종단도 7월 7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에 대해 '전 신교도들과 함께 축하한다'는 논평을 내었다.

우리나라는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로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스포츠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하게 됐다. '스포츠 그랜드슬램'이란 하계올림픽(1988년 서울),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한일 공동개최), 세계육상선수권대회(올해 대구), 그리고 동계올림픽(2018년 평창) 등 세계 4대 스포츠 빅 이벤트를 모두 유치함을 의미한다. 그랜드슬램을 이룬 것도 영광이지만, 무엇보다 두 번에 걸친 유치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낸 쾌거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따른 총 경제효과가 64조9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러 나라에서 올림픽 등 세계적인 스포츠 빅 이벤트를 갈망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경제효과에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제전을 통하여 국가가 부흥하는 경우를 우리는 여러 번 보아왔다.

이웃 종교에선 '경전상'으로 부의 축적을 죄악시하지만,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애당초 부의 가치와 복지와 행복을 위한 경제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가르쳤다. '전륜성왕사자후경'은 "가난은 범죄와 부도덕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쿠타단타경'에서 부처님은 "절도 같은 범죄는 형벌로만은 근절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런 범죄를 통제하고 근절하려면, 누구나 직업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며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또한 통치자가 지켜야 할 열 가지 덕목 중 '백성의 복리를 위한 넉넉한 조치'를 삽입함으로써 경제의 중요성을 가르치셨다. 적멸의 도를 중시하되 증장의 도 또한 중시하라는 밀교적 가르침이다.

따라서 동계 올림픽 유치를 처음 시도한 전임 정부와 현 정부는 통치자의 덕목 중 하나만큼 제대로 실현하려 노력한 점에 대해서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다만 염려스러운 점은 동계올림픽이라는 대사를 통해 얻은 부가 소수에게만 편중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국경도 이념도 개의치 않는 많은 장점을 가진 신자유주의, 그러나 가장 큰 폐해가 바로 '부의 편중'이다. 비록 도덕적인 하자 없이 쌓은 것일지언정, 권력이든 부든 소수에게 편중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백 개의 도넛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데 한 개의 도넛도 가지지 못해서 배가 고픈 사람이 네 명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어도, 96개를 가진 자는 네 사람의 고통보다 크지 않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이익은 커지게 된다. 벤담이 말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또 하나, 환경문제를 풀어야 한다. 경기장이 들어설 정선군 가리왕산은 산림청이 식물유전자 보존을 위해 특별히 관리하는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이다. 한계령 풀, 도깨비부채 등 희귀식물과 분비나무 숲 같은 원시림이 있는 가리왕산은 2008년 10월 '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환경보호단체들은 이곳에 활강 슬로프를 만들면 중요한 식물자원이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어려운 것이 자연환경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측은 경기장 건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환경의 중요성을 충분하게 고려하여 중요한 식물자원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계획이라고 했다. 위원회가 환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다소 마음이 놓인다.

앞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기까지 우리에게 7년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지금까지 준비해 온 10년과 합치면 17년이 된다. 근 10년 동안 우리 국민들의 애를 태웠으며, 두 번이나 실패한 끝에 이루어낸 쾌거와 두 번의 실패가 주는 의미를, 위에 언급한 두 가지 문제를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해결하라는 뜻으로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