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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편집부   
입력 : 2011-07-05  | 수정 : 201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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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내재한 보편적인 정서로 칠정(七情)을 설명하며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든다. '기쁨(喜)'과 '즐거움(樂)'은 엇비슷한 감정으로 뚜렷이 구별되지 않으니 그들 중 하나를 빼고 빈자리에 '부끄러움(恥愧)'을 포함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부끄러움은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부족함을 알고 떳떳하지 못함을 느끼는 심리작용이니 옛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도(道)의 시초가 된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을 형용하는 여러 말 중 '수치(羞恥)'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어 스스로 떳떳치 못함을 일컫는다. 분수주제라는 뜻으로 쓰이는 '염치(廉恥)'는 자기 처지에 걸맞은 행동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아는 마음이다. '참괴(慙愧)'는 심장을 베일만큼 부끄러워 괴로워한다는 뜻이니 부끄러움의 최종단계라 할 만하다. 부끄러움은 양심이 촉발하는 내면의 소리다. 부끄러움은 정신분석학적으로 과거의 트라우마(trauma·정신적 외상)와 관계 있는 경우가 많아 자기혐오와 학대의 위험성이 있지만 이를 극복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활용하면 자기개선을 이룰 수 있다.

부끄러움은 양심이 촉발하는 내면의 소리다. '내면을 들여다 봄'과 맥이 닿아 있으니 깨달음의 통로나 선행감정이 되기도 한다. 깨달으려면 전심전력을 다해 사물의 이치와 핵심에 닿아야 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혹은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을 갖고 언저리를 끈질기게 탐사하여 시추공(孔)을 내려뜨려야 한다. 대저 '깨달음'이야 말로 뭇 현인과 성인, 구도자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무상의 경지가 아니던가. 부끄러움의 성찰은 깨달음을 낳고 깨달음은 분발의 계기가 되어 종종 새로운 지혜의 발견과 용기 있는 실천으로 이어지며 새롭고 낯선 창조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

인류가 우러르는 큰 위인들도 참회에 대한 저작을 남겨 후인들을 숙연케 한다. 이를테면 로마제국 말기의 사목 성(聖) 아우구스티누스, 프랑스의 계몽주의사상가 루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같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그렇다. 그들은 젊은 시절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세속에 물들고 나약한 내면을 지녀 방황하기도 했지만 통렬한 반성과 부끄러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에 힘입어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인류의 정신사에 찬연한 빛을 던지는 사표가 되었다. 자기성찰을 통해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내던져 존재에 대한 긍정을 실천한 것이다.

김창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