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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제561호)

편집부   
입력 : 2011-06-29  | 수정 : 20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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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부터 풀어주자, 그것이 해탈이다

7월 15일 해탈절은 우란분절을 진각종식으로 명명한 불가의 명절이다.
우란분은 범어 울람바나(ullambana)의 음차(音借)로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미상불 목건련의 어머니 청제 부인은 살아생전 철저히 거꾸로 매달린 삶을 살았다. 그는 삼보를 부정하고 살생을 일삼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청제 부인이 받은 전도몽상의 과보야 모두가 아는 바다. 그나마 효성과 불심이 지극한 목련존자를 자식으로 두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청제 부인은 영영 아귀고를 벗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우란분절을 맞이하여 선망부모를 위해 천도재를 올리고 청정수행자를 공양하는 등의 공덕을 쌓는 불가의 풍습은 아름답고도 숭고하다. 그러나 이 날을 재나 올리고 수행자를 공양하는 날로만 여긴다면 이 또한 거꾸로 매달린 생각이다. 특히 이 날을 굳이 해탈절이라고 명명한 우리 종단의 뜻을 생각해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해탈이란 묶여 있는 자가 풀려나 자유를 얻는다는 의미일진대 선망부모의 천도와 해탈을 서원하는 이가 정작 3독(三毒)과 4상(四相)의 밧줄에 결박당한 상태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어찌 묶인 자가 묶인 자를 풀어 주겠는가. 선망부모를 해탈케 하려면 먼저 자신을 결박하고 있는 3독과 4상의 밧줄부터 풀어내야 한다. 우리는 목련존자가 백미오과(百味五果)로 시방승을 공양하기 전에 이미 모든 결박으로부터 풀려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利)를 위해 의(義)를 저버리는 속물근성으로부터, 하루아침 티끌로 변할 재물로부터, 가당찮은 세력과 파벌로부터, 닭 벼슬보다 못하다는 벼슬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신을 풀어줄 때 선망부모의 해탈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내가 전도몽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그 순간 선망 부모는 지옥문을 나선다.


4성지 성역화불사, 호시우보의 자세로

종단이 (가칭)사성지성역화위원회를 출범시키고 4대 성지 성역화작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취임 3년 차를 맞이하는 혜정 통리원장이 그동안 낡은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역대 통리원장들이 취임 초기에 강한 의욕을 보이다가도 유야무야 끝을 흐려버렸던 사안을 다시 끄집어낸 점은 높이 살만 하다. 지난 4월 정기종의회에서 4성지 성역화의 필요성을 역설한 데 이어 6월 월초불공 직후 종단 실무자 및 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종조탄생지인 금강원을 찾은 행보 또한 매우 고무적이다. 취임직후부터 4성지 성역화불사의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한 만큼 그 원력과 실천의지에는 크게 공감하나 몇 가지 당부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그동안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보았던 전승원 건설이 종단 역사상 최초의 모연불사를 통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있으나 중지를 충분히 모으지 못하고 서둘러 시작한 측면이 있는 만큼 이번 불사는 호랑이의 눈과 같은 통찰과 소의 걸음과 같은 신중함으로 접근해야 한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비불자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참신한 스토리텔링을 개발해야 한다. 4성지는 진각종도들과 일반불자들의 신심고취와 비불자들에 대한 포교의 제 일선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대기적인 서술과 백화점식 데이터의 나열이 아니라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보여주기 식의 거창한 건물이나 조형물을 세워놓는 성지조성은 아니함만 못하다. 치밀하고 깊은 통찰 없이 규모와 외형에 치우친다면 가장 먼저 종도들의 외면을 살 것이다.

셋째, 가족단위의 여가문화 발달에 따른 사회적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 주 5일 근무제의 확산은 여가문화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템플스테이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도 그 일면이다. 특히 종조탄생지인 금강원이 소재한 울릉도는 천혜의 자연을 잘 보존하고 있으므로 다양한 콘텐츠로 참배객은 물론 관광객의 니즈까지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어야 한다. 적어도 금강원 종조전 만큼은 국적 불명의 콘크리트건물이 아닌 전통적인 목조건물이어야 한다. 철근과 콘크리트로는 종조의 정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니와 100년을 지탱하기도 어렵다. 저 동해의 한 가운데서 천년을 우뚝 서 있는 종조전을 지으려면 목재가 제격이다.
종단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내외의 다양한 요구에 복무할 수 있는 4성지, 고졸한 예술미와 기품을 갖춘 문화재급의 4성지를 법계에 헌공할 그 날을 벅찬 가슴으로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