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상호존중이 갈등해소 지름길"

편집부   
입력 : 2011-01-06  | 수정 : 2011-01-06
+ -

선사·신학자 종교간 대화

"최근 그리스도인들과 불자들 사이의 갈등이 있는 시점에서 서로를 깊이 존중하고 이해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이것이 남과 북 사이에도 대화를 나누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예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 신학자 폴니터(미 유니온신학교) 교수는 12월 31일 오후 2시 조계종 제9교구본사 동화사 설법전에서 '수행을 통해 깨닫게 되는 분별심 없는 참 나'를 주제로 열린 '초조대장경 1000년, 밀레니엄 평화토크'에서 이같이 밝히고 "봉은사와 동화사에 들어와 '땅 밟기' 등의 무례한 행동을 한 그리스도인들은 전체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동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불교에 대해 행한 무례에 대해서 깊이 사죄를 드린다"고 말했다.

불교계의 존경받는 스님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국을 방문했다는 폴니터 교수는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종교의 성소에 방문해 무례한 행동을 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한 행동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에서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밀레니엄 평화토크 대담자로 참석한 한국선불교의 정통법맥을 이어오고 있는 진제(조계종 원로의원) 스님은 "갈등해소는 종교인들의 책임이며 의무"라며 "불교인과 그리스도인, 나아가 모든 종교인들이 합심해 인간의 평화로운 국토를 만드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제 스님은 이어 "만 중생이 선수행을 꾸준히 연마해서 마음의 고향에 이르면 지구촌이 한집이고, 형상이 있고 형상이 없는 것이 나로 더불어 둘이 아니다. 너와 나가 둘이 아닌데 무슨 투쟁이 있고 반목이 있겠느냐"면서 "2013년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열릴 예정인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 폴니터 교수가 참석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진제 스님은 폴니터 교수에게 '참된 자신을 바로 보라'는 뜻의 '진아(眞我)'라는 법명과 함께 '수처작주'라고 적힌 휘호를 선물했다.

이번 밀레니엄 평화토크 대화마당은 12월 31일 진제 스님과 폴니터 교수의 대담 및 동화사 금당선원 수좌스님들과의 화해와 상생을 위한 대화에 이어 1월 1일 진제 스님의 신년법어, 폴니터 교수의 '부처님 없이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는 주제강연에 이은 수좌스님들과의 대화 등이 펼쳐졌다.

1월 2일에는 부산 해운정사 수좌스님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평화발원 자비명상, 1월 3일에는 범어사 순례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1월 5일에는 국제선센터 선원장 효담 스님,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 상도선원장 미산 스님,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이정배 기독자교수협의회장, 정현경 뉴욕 유니언신학교 교수 등 스님 및 종교학자들과 폴니터 교수와의 '내적 평화와 세계평화'를 주제로 한 대화마당이 마련됐다.

다음은 12월 31일 동화사 설법전에서 진제 스님과 폴니터 교수간에 이뤄진 대담 내용이다.

진제 스님=미국에 선불교가 유포돼 수행을 한다고 알고 있다. 선(禪)을 어떻게 수행을 하고 있는가?

폴니터 교수=미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와 정의를 위해 활동을 하고 있고, 평화와 정의는 어느 하나를 빼놓지 않고 항상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저와 제 아내 캐이티가 엘살바도르에서 평화와 정의를 위해 활동을 해오면서 깨달은 것은 평화와 정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평화로워 져야 한다는, 평화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동료 불자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할 때 행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과 기도와 같은 영적인 수행도 함께 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명상과 행동은 늘 함께 가야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

폴니터 교수=모든 종교가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다원주의적 사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른 종교들 안에 나타낼 수 있고 구원받는다고 알고 있으며 이 구원이 그리스도인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인들도 다른 방식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구원은 불교에서는 아마 해탈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해탈이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다.

진제 스님=종교의 자체가 인류를 구원하는 데 있다.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진리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 요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는 개개의 특징이 있지만 그 가운데 다소의 심천(深淺)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모든 종교인이 심천은 차치하고, 모든 인류로 하여금 평화와 안락국토에 인도하는 데 초점이 있다고 본다. 불교의 진리는 '참나' 가운데 우주의 진리가 있다고 본다. 그 참나는 모든 사람들 개개인에 동등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알지 못해 수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의 선불교는 동양의 정신문화 자체를 만인류에게 바로 제시하는 간화선이다. 사람이 갖고 있는 참나는 시(始)와 종(終)도 없으며, 모든 우주의 생멸이 참나의 근원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일상생활 가운데 참나를 발견하는 선수행을 꾸준히 일용(日用)에 연마하면 밝은 지혜와 자비와 안락국토가 이루어질 것이다.

폴니터 교수=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안에 참된 나가 있다고 할 때 그리스도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큰스님은 우리 안에 불성을 구현한다고 할 때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 성을 구현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안의 그리스도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스승이 필요하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스승으로 하듯이 우리 바깥에, 우리의 그리스도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지도하고 안내할 스승이 필요로 하다고 생각한다.

진제 스님=진아를 깨달은 부처님은 모든 지혜와 모든 덕상이 갖춰져 있는 것을 만중생에게 드러내 보였다. 그래서 이러한 부처님과 같은 지혜와 덕상을 모든 분들이 수용하고자 한다. 일상생활 속에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이가?' 이것은 간화선의 화두 참구법인데 이 화두 참구법을 일용에 참구하고 의심하고 의심해서 일념삼매가 지속되는 과정이 오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진리의 문에 들어가서 위대한 진리의, 안목의 스승이 되는 법이다. 그 참나 가운데는 성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미(迷)함도 없고, 항상 여여해서 일용사에 만인 앞에 진리의 전을 펴기도 하고, 만인 앞에 진리의 전을 거두기도 하고, 만인 앞에 진리의 전을 쥐어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고 자재하게 쓰인다.

폴니터 교수=불교에서 참 자아를 찾고자 수행하고 명상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배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불자들로부터 배울 것이 무엇보다도 명상이라고 하는데 불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이 불자들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참 자아를 찾고 어떻게 평화로워 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진제 스님=우리 불교에서는 첫째 자아완성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 자아완성을 뚜렷이 이루면 위대한 부처가 되고 위대한 도인이 된다. 모든 인류로 하여금 평화와 안락국토에 인도한다는 말이다. 자아의 밝은 진리를 갖추지 못하면 만중생을 인도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일상생활 가운데 진아를 발견하는 간화선을 참구하라고 항시 지도하고 있다. 간화선을 해서 진리의 언덕에 이를 것 같으면 팔만사천 지혜와 팔만사천 법문이 다 갖춰져서 만중생을 지혜의 언덕, 열반의 언덕에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깨달은 자의 의무이다. 우리 불교에서는 예수교와 천주교에서 봉사와 사랑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감탄한다. 내면의 세계를 바로 보는 선 수행을 쫓아서 자아완성을 이룸으로 인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법이다. 한국 선불교의 독특한 일미(一味)가 바로 유아독존의 그 위상을 드러내는 데 있다.

폴니터 교수=스님께서는 세상에 나가서 일을 하기 전에 참 자아를 찾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이 자리에 앉아서 수행을 할 때 지금 바깥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받고 있고, 고통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제가 더 수행을 해야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제가 이 자리에서 수행을 해서 제 자아를 찾을 수 있겠는가?

진제 스님=불교에 있어 보현의 행(行)이 있고 문수의 지혜를 닦는 두 가지 양 수레바퀴가 있다. 한편으로는 보현의 정신사상을 받들어 일용에 일체중생을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부처님 국토에 인도해놓고 자기는 마지막에 성불을 한다는 수행법이고 또 하나는 모든 이타행을 접어놓고 자기 우선으로 대정안(正眼) 즉 바른 진리의 눈을 갖춰 일체 중생의 지도자 자격으로 부처님 언덕에 인도하는 수행법이 형성돼 있다.

폴니터 교수=우리는 '수행'과 '행동'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한데 큰스님은 우선적인 것은 '수행'이라고 말씀하시는 건가?

진제 스님=불가에는 바른 수행을 해서 일체중생을 건질 수 있는 바른 진리의 눈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자기의 눈이 어두운데 모든 중생을 안락국토에 인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눈이 밝아야 모든 중생을 이끌어 안락국토에 인도할 수가 있고 바른 지도를 할 수가 있다. 부처님 법에는 '자기를 바로 보라'는 것이 있다. 자기 가운데 모든 진리가 있으니, 자기를 바로 봄으로 인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격을 다 갖춘다. 그래서 전국의 큰 사찰에는 선방이 있어 자기 자체를 바로 보는 선 수행을 깨달아 모든 인류로 하여금 이끌 수 있는 정안을 갖추는데 초점을 맞춰 정진하고 있다. 제방에서 참선하는 우리 선객스님들은 자기가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데 초점을 먼저 맞추고, 또 주지 등 외호하는 스님들은 모든 이타(利他), 모든 일체 사람을 이롭게, 선행을 닦는데 초점을 맞춰 양 수레바퀴와 같이 함께 굴러가고 있다.

진제 스님=동양의 선(禪)이 서양에 더러 유포되고 있는 줄 안다. 동양 선의 맛을 어느 정도 보았는가? 만인에게 또 어떻게 선의 바른 지도를 하고 있는가?

폴니터 교수=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불교이고, 하나는 이슬람교이다. 이슬람교는 보통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성장하고 있지만, 불교의 성장은 개종에 의해서 성장하고 있다. 이 개종은 주로 유대교나 기독교와 같은 아브라함신앙이라고 하는 서구 기독교나 유대교 전통에서 개종하는 경우가 많다. 제가 불교공부와 수행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깨닫고 발견한 것은 1980년대부터 매일 명상을 해왔기 때문이다. 불교는 나에게 지금까지 가장 힘들게 씨름해왔던 그리스도교신앙과 신학의 여러 가지 것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2년 전 제가 출간한 '부처님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는 책은 미국의 많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책의 내용과 같은 경험을 갖고 있으며 불교를 통해서 자신들의 그리스도교신앙과 신학을 새롭게 이해하고 있다. 비유를 들자면 불교의 아함경으로 인해 제가 그동안 못 봤던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새롭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진제 스님=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교와 그리스도인들의 갈등을 알고 있는가?

폴니터 교수=외국인이기 때문에 여러분만큼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동료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불교를 폄훼했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그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따르고 있지 않은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사랑 받을 이웃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웃들, 심지어 나의 적이 될 수 있는 이웃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의 성소(聖所)에 방문해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들은 예수님의 복음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불자-그리스도인 대화를 매우 좋아하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도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제 스님=잘 들었다. 사실대로 잘 짚었다. 우리 불교는 부처님 이후로 오늘날까지 투쟁을 부추기고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전혀 없었다. 만중생이 선수행을 꾸준히 연마해서 마음의 고향에 이르면 지구촌이 한집이고, 형상이 있고 형상이 없는 것이 나와 더불어 둘이 아니다. 너와 나가 둘이 아닌데 무슨 투쟁이 있고 반목이 있겠는가? 그래서 이번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도 며칠 전에 로마 교황청을 찾아 교황을 만나고 서로 대담을 하고 돌아왔다. 모든 세계 종교인들을 2013년도에 초청해서 평화의 공존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 세상에 다툼이 없고 싸움이 없고 전쟁이 없는 그러한 평화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많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폴니터 교수도 2013년도에 동참하셔서 모든 인류에게 평화의 선물을 선사해 주기 바란다.

폴니터 교수=초청에 정말 감사 드리며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하겠다. 동시에 여기 계신 유니언신학교 정현경 교수를 비롯한 모든 분들이 함께 협력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재우 기자 sanjuk@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