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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

편집부   
입력 : 2010-11-17  | 수정 : 20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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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설악산부터 전해 내려오는 단풍 소식에 바쁜 일손을 잠시 거두고 삼삼오오 가을 정취를 찾아 떠나곤 한다. 여러 시인 묵객들이 수많은 시와 그림, 노래를 남기는 가을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어느 시인은 단풍을 보고 불콰한 아버지를 떠올렸고 누구는 실직한 사오정(사, 오십대 정년 퇴직자)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생을 마감하고 지상으로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낙엽을 보면서 우리는 거대한 순리의 바퀴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온난화가 가속되고 난 뒤, 언제부턴가 우리는 사계절 구별이 뚜렷하지 않는 시기를 살고 있다.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산업화가 가속되면서부터 우리주변은 점차 황폐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지난 추석 즈음에는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어서 초가을이라고는 하지만 늦더위에 시달려야했다. 그러나 추석이 지난 뒤 갑자기 쌀쌀한 날씨가 연속되더니만 급기야 한라산에는 시월에 폭설이 내리고 중부지방과 강원도 산간지방에는 영하의 날씨가 되어 얼음이 얼었다. 보도에 의하면 기상관측이래 시월 달 치고는 수십 년만의 추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 일요일은 오랜만에 단풍과 은행나무 노란 잎을 보기 위해 충북 영동의 영국사를 찾았다. 만산홍엽을 이루어야할 이 시기에 가을산은 말라비틀어진 쭉정이처럼 폭삭 늙어 있었다. 더욱 안타까운 건 노란색 물도 들기 전에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인지 은행나무는 수많은 잎사귀를 스스로 내려놓고 말았다.

잎맥을 흐르는 수분이 어는 현상은 인간들 실핏줄이 막히는 것과 동일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은행나무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이파리를 버리는 아픔을 선택한 것이리라.

자연은 스스로 자정능력이 있다하지만 기상이변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은행나무가 보여준 것이다. 급박하게 변하는 시대를 살아갈 현대인들의 가슴에는 점차 냉랭한 기류가 흐르고 소통부재로 인해 인간성은 점차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 하여 언제 어느 시기에 스스로를 포기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영국사 등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불콰해진 발길은 무겁고 저녁햇살은 바싹 말라버린 떡갈나무에 걸려 비틀거리고 있었다.

임윤/시인